지역은 생산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생산과 소비의 공간이 다를 때 벌어지는 일들.

by 하루끝

지속가능한 식문화 매거진을 발행하다, 올해 들어서 로컬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어째 비주류 영역의 출판만을 빙빙 돌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경제적 상황을 눈감고 있는 상황에서 영역에 대한 불만은 없다. 두 영역에서의 활동은 모두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듣다보면 이 영역들을 포기하지 못 하는 이유들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이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홍익대학교 소모임 두 곳을 인터뷰했다. 홍익대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소모임 모두 미디어 아트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예술의 영역은 언제나 부의 향유물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태생이 지방이어도 수도권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는 예부터 내려온 구조다. 그 구조는 기회의 여부에 따라 옮겨진다. 물론 유명해지면 다시 지방으로 간다.


예술의 생산과 소비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이 차이는 기회의 여부이다. 예술가들은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이동한다. 즉 지역이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지역이 예술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예술의 생산과 소비는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형식의 예술이 피어날 수 있다. 즉 대중의 선호가 아닌 창작자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예술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 영역에 한정되었다고 할 수 없다. 도시 재생 영역에서도 제한된 내부 인구로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없기에 관계 인구가 지역 내에서 향유하는 콘텐츠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그런 구조가 현실적이다. 그러나 수도권과 동떨어진 지역은 그마저도 어렵다. 더불어 해외 여행이 휴가의 주류 지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이 상황은 가속화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고민은 수도권의 인구를 어떻게 끌어오는 것을 넘어서, 수도권 해체에 대한 필요성이다. 지방 엥커 지역들의 인구를 어떻게 높이고 끌어올 것인가. 그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수도권 해체일 뿐이다.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기에 그저 푸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소멸과 도시 재생에 대한 지원의 감소가 현실이 되는 과정에서, 지역은 정말 소멸만이 있는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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