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늘보의 미래진료소_Day8
2) 사라지는 일자리: '정형화'의 새옹지마
지난 시간에는 생산성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이야기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추구하는 자동화 및 연결성의 극대화로 인해 '복제' 중심의 생산성 구조는 '창의성' 중심의 생산성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시간에는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논쟁이 있다.
미래에 일자리는 줄어들 것인가?
알파고 사건 후 인공지능의 열병이 심화되어 가자 미래기술이 발달하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에게 일자리를 모두 빼앗겨 결국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전망과 공포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세계경제포럼은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향후 5년간 5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으며, 앞서 소개한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 연구소장은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다. 칼 프레이, 마이클 오즈번 옥스퍼드대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에서는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국들에서 40% 정도의 일자리가 20년 내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으며, 2016년 10월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에서는 2025년에는 인공지능 로봇기술에 의해 사람의 업무가 대체될 대체위험비율이 평균 70.6%에 달한다고 하였다. 4월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 중 89.9%는 4차 산업혁명으로 전체적인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평가들에 대한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OECD에서는 자동화로 인해 업무(task)의 일부분이 대체되더라도 직업(job) 자체가 사라지지 않으면 오히려 일자리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는 인공지능기술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2025년까지 자율주행 스마트 카와 가상현실, 3D 프린팅, 사물인터넷 등의 유망 분야에서 약 26만여 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이라 하였다.
이 논쟁의 승자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승자가 중요하진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양측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사실, '기존의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도 '기존의 일자리'가 늘어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하지 않는다. 그 감소분을 대체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 해도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져 해고당한 노동자는 '새로운 일자리'로 고용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평생 하나의 직업만을 위해 노력하다 해고당하고 치킨집을 여는 세태에 '새로운 일자리'로의 전환은 결코 수치로만 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더욱 중요하다. 알 수 없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직장은 정말 안전한지 이제 살펴보자. 위의 다양한 의견만큼이나 어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지에 대한 예측도 너무나 다양하다. 얼마나 다양한지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사라질 직업 10'이라고 검색하여 검색된 이미지를 살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방향성은 존재한다. 바로 '정형화된 일자리'이다. '정형화된 일자리'란 작업의 순서, 수준, 방법 등을 순서에 따라 자세하고 구체적인 매뉴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형화'의 특징은 곧 '알고리즘화'로 이어진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절차나 방법을 뜻하는데, 이 알고리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로봇에게 가르칠 수 있다. 즉, '정형화된 일자리'는 '알고리즘화 가능한 일자리'이므로 '로봇이 대신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되는 것이다.
정형화 = 알고리즘화 = 로봇도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일자리들이 사라질 것인지 알아보자. 일단 계산원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아르바이트생 대신 무인 계산대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원하는 물건을 집어 들고나가기만 하면 알아서 결제가 되거나, 집에서 주문과 결제를 하고 자동으로 배달 또는 프린팅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또한 은행원이 있다. 이미 은행의 업무는 비대면 업무로 많이 옮겨 가고 있고, 세계 최초로 화폐를 발행했던 스웨덴은 현금과 은행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회계사나 부동산 중개인 등도 사라질 확률이 높다고 손꼽히며, 텔레마케터와 헨나 호텔처럼 접수계 업무를 맡은 직종, 그리고 정형화 가능한 업무를 하는 공무원도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판사, 변호사 등 법률가들을 비롯하여, IBM의 왓슨과 같이 의사도 위협하고 있으며, 번역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직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발달은 택시기사나 버스, 트럭기사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고, 발레파킹이나 주유소 및 주차장 직원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다. 3D 프린팅과 스마트 공장 기술은 제조업의 구조를 바꾸거나 무인화를 통해 기존의 제조업 종사자와 건축, 토목업 종사자들과 경쟁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사회의 기반 시스템에 적용되면 금융뿐 아니라 복지 및 정치의 모습까지 바꿀 수 있어 그 파급력은 미처 다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기술의 변화뿐만이 아니다. 인구구조의 변화의 문제 또한 교육업과 학원가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 환경 변화의 문제 또한 기존의 산업들로부터 친환경 산업으로의 이동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미래에 사라질 직업은 너무나도 많아 보이기만 한다. 어느 하나 안심이 되는 직업은 없다. 직종이 안정적이라고 하여 자신이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일 하고 있는 업무가 정형화된 업무라면 로봇이 경쟁자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어쩌면 변화는 생각보다 늦게 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이미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기대하는 내일이 그저 오늘의 반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지 의심해보자. 기술의 발달로 수명 또한 길어지고 있는 지금 40, 50대에 퇴직하게 되면 인생 중반에서 길을 잃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인생 이모작, 삼모작을 비롯한 다모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길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핸드폰 대리점이 20년 전에는 볼 수 없었음을 기억하자. 미래는 그보다 빠르게 변해 갈 것이다. 그러니 늦기 전에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