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월간 <디자인> 8월호 ‘워케이션’ 기고 칼럼
워케이션을 주제로 한 월간 <디자인> 8월호를 준비하던 담당 기자가, 일전에 내가 쓴 '한국에서 워케이션 도입이 어려운 이유'를 읽고 기고 요청을 해왔다. 최근 여러 기관과 행사에서 워케이션 트렌드와 체류 여행으로의 변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어서, 내친 김에 업데이트된 정보와 견해도 소개할 겸 칼럼을 기고했다.
다만 위에 실린 것처럼 내게 할당된 지면이 1페이지여서, 원고가 거의 절반 가까이 생략되었다. 그래서 최초 기고했던 원문 전체를 소개한다.
서서히 불어오는 워케이션 트렌드
원격근무의 장기화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도심을 떠나 휴가지에 머물며 일을 병행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뜻하는 워케이션(Work와 Vacation의 합성어)은 한국에서도 이제 낯설지 않은 신조어로 쓰이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한달 살기'라고 불리는 체류형 여행이 있었지만, 워케이션은 집이 아닌 곳에 머무르며 일과 여행을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노동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한 미국의 경우,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원격 근무 가능한 회사를 선택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소위 '대(大)퇴사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워케이션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에서 에어비앤비가 전사적인 워케이션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4월에, 한국에서도 새로운 워케이션 정책을 내놓은 기업이 있다. 네이버의 계열사인 라인플러스다. 국내 지역으로 한정된 원격근무를 2022년 7월부터 외국에서도 허용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이후 네이버, 카카오, 야놀자, 알서포트 등 타 IT기업에서도 워케이션을 빠르게 도입하며 이를 사원 복지 및 근무 환경 개선 제도로 일제히 홍보하기 시작했다.
한편, 인구 소멸로 체류 여행에 눈을 돌려야 하는 지자체도 발빠르게 워케이션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강원도는 2021년부터 '강원 워케이션' 캠페인을 통해 기업에 맞춤형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제주와 부산 등에서도 워케이션 시범 사업을 추진하며 뒤쫓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워케이션이 제도권에 들어오며 자리를 잡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과 개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워케이션의 한계
하지만 여전히 워케이션을 둘러싼 다양한 우려와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앞서 워케이션을 도입한 기업은 규모가 큰 대기업이나 IT 회사들이 대다수다. 즉 워케이션의 필수 조건 두 가지인 공간을 마련할 비용, 그리고 원격 근무가 가능한 업무 성격 모두를 충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워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타 지역에 별도의 업무 공간이 필요한데, 한화처럼 자사의 계열사인 호텔을 활용하거나 네이버처럼 별도의 오피스를 운영하는 방식이 다른 기업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이는 곧바로 비용 문제로 직결된다. 워케이션의 효용성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비용 대비 효용을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 강의를 하다보면 크고 작은 기업의 경영진들은 ‘워케이션 하려면 비용이 들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냐’며 의구심을 보였다.
개인 측면에서도 워케이션은 생산과 휴식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에 놓여있다. 블로그 상에 워케이션 후기를 검색해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업무에 중요한 디자이너와 기획자 직군의 워케이션 경험기가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서울의 IT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지인은 ‘재택 근무 기간에 휴양지에 가서 원격 근무를 해본 적이 있다. (워케이션을) 스스로의 의지로 할 때는 만족도가 높았는데, 만약 회사에서 이를 제도화해서 워케이션 일정을 매번 결재받게 만든다면 차라리 휴가를 쓰는게 나을 것'이라며 반감을 보였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 종사하는 워케이션 경험자는 ‘놀지도, 일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였다며 업무 시간 중에는 자유시간을 활용할 수 없었던 점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다. 회사도 집도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 일에 집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개인마다 몰입도와 생산성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지점은 개인 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워케이션을 흔쾌히 도입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워케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기업과 사회, 개인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제도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기업이 워케이션에 접근하는 시각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유수의 기업들이 발빠르게 워케이션을 도입한 것은 단순히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서는 금전적 보상 뿐만 아니라 근무 환경의 자율성 또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이 워케이션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비용과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지자체의 워케이션 지원 제도를 십분 활용해 볼만 하다. 부산시는 2022년 7월부터 ‘리모트 워크 플레이스 사업’에 참여할 기업을 10월까지 모집한다. 신청한 기업에는 원격 근무를 위한 사무공간과 체류 비용 일부,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덜 수 있다. 타 시도 및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지원 사업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업무 목적과 구성원의 편의에 맞는 지역을 선별해 워케이션에 도전해볼 수 있다.
워케이션의 제도화, 시급한 개선점은?
다만 지자체 워케이션 지원 프로그램은 초기인 만큼 여러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한 지자체의 워케이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기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숙박 지원은 되지만 근무 공간(코워킹 오피스 등) 시설이 없어서 직원들이 숙박시설 내에서 일을 겸해야 했다. 또한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원을 해줬으니 ‘지역 홍보’를 하라며 리뷰 콘텐츠 작성을 의무화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과연 시행 기관에서 체류 관광과 워케이션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기업체가 특정 지자체를 선택해서 체류한다는 자체가 해당 지역 경제에 일정 부분 보탬이 되는데도, 추가적인 미션을 부여해 부담을 준다면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좀더 많은 기업의 참여를 희망한다면, 지자체 역시 체류형 업무에 필수적인 시설과 제반 환경을 제대로 지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차원에서 워케이션이 좀더 생산적인 여행 소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업형 워케이션과 개인형 워케이션 모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초창기 워케이션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개인형 워케이션이 대세가 됐다. 팬데믹 이후 인기를 끌고 있는 이동형 주거 서비스(*월 정액제로 가입해 전국 각지의 주거시설을 옮겨 다니며 살 수 있는 서비스, 어드레스(ADDress)가 대표적이다)가 워케이션 수요와 만나면서 초토화된 지방 경제에 단비가 되고 있다. 2022년 7월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일본어로 '워케이션'을 검색하면 한국(7,000여 건)의 27배인 193,000개 이상의 콘텐츠가 검색된다.
휴양지에서 상사의 끊임없는 지시를 받으며 시간 맞춰 화상 회의를 하는 기업형 워케이션이 워케이션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면 이토록 폭넓은 층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만들어갈 한국형 워케이션 또한 일하는 사람 모두가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더 나은 업무 환경을 가질 권리로, 지역에 기여하는 가치 소비의 일환으로 널리 확대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김다영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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