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영 Jul 31. 2023

나로서 충분하다는 주문

영화 <바비>를 보고


소설가 정세랑은 <시선으로부터,>에서 이렇게 썼다.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성취를 하려니 생활이 망가지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


이 문장에 공감하며 이후론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언사를 들을 때마다 헷갈렸다. 이를테면 “그만하면 할 만큼 했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자”, “나는 나로서 충분한 존재다” 같은. 이게 후려치기 당하는 여성들을 위로하는 말인지, 그 자체가 대충 그만하고 얌전히 있으라는 후려치기인지 말이다.


최근 본 영화 <바비>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대놓고 드러난다. 물론 여기까지 알아채는 관객이 다수는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바비가 사는 바비랜드에서는 대통령도, 기자도, 변호사도, 소방관도, 의사도 모두 여자다. 남자 인형인 켄들은 오로지 바비의 관심만을 갈구한다. 특별한 직업 없이 해변을 지키며 바비의 시선을 기다리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이다. 우연히 인간 세계에 떨어진 켄은 사회 중책을 모두 남성이 맡고 있는 가부장제에 매료된다. 그리고 곧 바비랜드에 가부장제를 설파하고 켄돔(Kendom)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려 한다.


바비들이 켄들로부터 바비랜드를 되찾아오는 여정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바비랜드를 되찾은 바비들은 켄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중책에 켄을 조금씩 앉힌다. 대법관은 안 되지만 지방판사 자리 정도는 주는 식으로. 현실 세계 여성들의 삶을 바비랜드의 켄이라는 남성 집단을 통해 얘기한다는 발상 자체가 ’그레타 거윅 감독은 천재인가?‘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왜 자꾸 “너 자체로 아름답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느니 단체로 주문을 외는 걸까. 그 사이 남자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가부장제 반란(현실에서는 아마도 페미니즘 열풍일)’ 이후 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이때 잠시 켄이 입고 있는 티셔츠 문구가 스친다.


“I am Kenough."


나로서 충분하다는 ”I am enough"와 “Ken"을 합친 말인데 지독하게 현실 세계를 비틀어 놓은 이 문구에서 나는 웃음이 터지는 동시에 처연해졌다. 이런 문구들은 당연한 말을 다시 외친다는 특징이 있다. “Girls can do anything"처럼. 너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기에 계속 주지시키는 말을 단지 남성 캐릭터가 재현했을 뿐인데 이렇게 우스꽝스러워진다니.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에게서 가치를 찾으라는 언사들에 조금씩 반감이 들기 시작한 때는. 나는 나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너 자체로 아름답다”느니 “이만하면 충분하다”느니 단체로 주문을 외는 걸까. 물론 여성으로 살면서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 사회는 그걸 뛰어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여성들도 섞여 있다. 기껏해야 200년 된 여성주의 역사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 사이 남자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일부 야망있는 여자들 역시 자신의 가치에 의문을 갖는 여자들을 외면하지 않기에. 유독 여성에게 강조되는 자신에게 만족하라는 말은, 마치 네가 가질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암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영화를 보고 더욱 짙어졌다. 만족하라는 주문 자체는 나쁜 말처럼 들리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이기에, 이게 왜 불편한지 완벽하게 언어화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이런 성찰이 왜 자꾸 여성 집단에 요구되는가에 의심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은 분명하다.

'가부장 나라' 켄돔(Kendom)을 만드는 남자 인형 켄(켄돔이라니... 조어마저 재기넘친다).


영화 <바비>는 켄의 입을 빌려서 해지는 가부장제-현실에선 여성들이 발화하는 페미니즘-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충분히 설명적이면서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둘러싼 사회의 시혜적 태도까지 비꼬며 이미 ‘빨간약 먹은’ 관객에겐 블랙 코미디적 통쾌함을 선사한다. 또 기존 현실 가부장제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 외적으로는 충분히 성적 대상화한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이 명확하고 단순한 주장을 숨겼다는 데 탁월함이 있다. 그 자체로도 영리한 시도이지만, 그게 진짜로 숨겨진다는 사실 자체가 코미디라 현실마저 영화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 속 에세이 쓰기> 특별강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