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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Feb 07. 2024

커리어 연명

여자들은 더 작고 적게 원한다

최근 80년대생 남자 세 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일을 통해 오래 알고 지냈고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동시에 나는 그들의 새로운 얼굴을 봤다. 또래 넷의 대화는 이내 커리어 고민으로 흘러갔는데 그 내용이 여성들과 나눴던 그것과 판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 연봉이 얼마고, 어느 회사에 가면 몇 배까지 연봉을 튀길 수 있고, 자신의 다음 자리는 C레벨(CEO, CFO, COO, CIO 등) 정도는 되어야 하고, 현재 조직에서 내 위에 있는 사람과 나이 차를 따져 보며 자신이 언제쯤 그 자리로 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적극적이고 또 적나라하게 정보가 공유되었다.


관찰한 바로는, 그들은 상대적 위치 파악에 능했다. 그들은 직장 동료가 자신보다 얼마나 강하고/약한지뿐 아니라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도 객관화했다. 자기 상하에 누가 있는지 파악하는 ‘지위 지각력’이 월등했다. 흔히 말하는 공간 지각력에는 성차가 없다. 하지만 이 지위 지각력만큼은 남성 집단에서 장려되고 길러짐을 보고 듣고 느꼈다.


나는 거의 한 마디도 끼지 못했다. 왠지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커리어 자체대한 고민이라면  나는 여자들의 그것이 확실히 더 깊고 강렬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어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 여자들은 나를 비롯해, 모이면 '오래 함께 일하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회사 내 인간 관계라면 저 동료가 나에게 호의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일로 만났지만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인지 정도만 인식해왔다. 성실하고 버겁게 하루치 노동을 쳐내고 있다.


바깥일에서 여자를 고꾸라지게 하는 허들-직장내 성폭력, 출산과 육아, 성차별 등- 앞에서 당장 눈앞의 장애물에 걸려넘어지지 않아야 하는 사람에게 멀리 앞을 보며 내달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허들을 자주 홀로 어렵게 넘고, 때로는 서로 치워주며 일해왔다.


직장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기특하게 여겨왔다. 그런 커리어 '연명'만 해도 힘에 부치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남자들은 더 많고 더 큰 것을 욕망하고 요구하고 얻어내고 있었다! 내 주변에 어떤 유능한 여자도 커리어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 동료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보이기 위한 생존술을 익히는 쪽에 가까웠다.


지나친 일반화 아니냐는 지적에 미리 한 친구의 말을 인용하며 반박을 갈음한다.


우리 남편 완전 샌님이잖아. 그래도 자기가 조직에서 어떤 라인을 타고 있는지는 귀신같이 알더라.


사람마다 야망의 농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조직에 들어온 새로운 얼굴에 자신이 속한 이너서클로 들어오라는 제의는 월등히 남자들이 더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추측의 표현을 쓴 이유는 그런 제의를 풍문으로 듣기만 했지 커리어우먼의 세계에서는 목격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와 과거 같은 팀에서 일했던 남성 팀원들만의 모임이 몇 년간 지속되고 있고, 내가 다음 인사 발령 희망지를 기사 포트폴리오로 어필할 때 남자 동료는 술자리에서 인사권자에 자연스레 말을 꺼냈다는 소리를 들은 바는 있다.)


남자를 커리어의 윗단으로 올리는 모종의 시스템이 어느 조직이든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킹리적 갓심'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남녀 임금 격차에는 이런 보이지 않으나 강력한 시스템도 매우 끈적하게 붙어있을 테다. 여자들은 동일 임금으로 더 많이 일하는 동시에, 더 적고 작게 요구한다. 그건 애초에 안 될 것이라는 무력함일수도 있고, 옆자리 남성 동료가 얼마나 더 비대하게 자신을 포장해 노동시장에 내놓는지 차마 상상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남자들처럼 욕망과 지위에 솔직해지는 태도를 가져야 할까. 이 지점에서 자아 분열이 온다. 너무 욕망만 좇지 말고 주위를 살피며 앞으로 가자는 자각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저 남자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나 하는 불안이 섞여 들어온다. 그런데 또 왜 균형감을 놓지 말고 살자는 생각은 유독 여자들이 더 가지나도 싶은 것이다. 여전히 의구심은 남고 고민의 뒷맛은 씁쓸하다. 이 지점에서 나누고 싶은 정세랑 소설가의 문장이 있다.


소소한 행복에서 의미를 찾자, 바깥의 평가보다 내면이 충실한 삶을 택하자는 요즘의 경향에 남녀 중 어느 쪽이 더 동의하는지 궁금했다. 내면이 충실한 삶은 분명 중요한데, 그것이 여성에게서 세속의 성취를 빼앗아가려는 책략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성취를 하려니 생활이 망가지고,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고.....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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