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을 음미하려면 홀로 자야한다고 믿는다. 퀸 사이즈 라텍스 침대 위에 온수매트를 깔고 나 홀로 대(大)자로 누워 자지 않는 한 다음날 기상에서 개운함을 느끼긴 어렵다. 인생의 3분의 1을 달콤하게 보내는 가장 값싼 방법은 지금 당장 실리 매트리스와 나비엔 온수매트를 주문하는 것이다.
수면 위생에 신경 쓰고부터는 꿈을 잘 안 꾼다. 잠이 체한 날은 꼭 꿈자리를 더듬게 된다. 꿈에서 욕망과 결핍을 오간다. 누군가를 만났다가 단절되고, 몸서리치며 일어났다가 이내 잠에 빨려 들어가고, 결국 가슴 한편을 쥐어뜯으며 침구에 고개를 파묻는다. 그런 날들이 며칠 이어진 때가 있었다. 이게 다 마음의 꼬리가 길어서 그렇다. 도마뱀처럼 지난 꼬리는 싹둑 자르고 앞에 놓인 만남들만 생각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일요일 새벽에 화들짝 잠에서 깨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덩그러니 침대에 놓여있다. 혼자 자기가 무서워졌다. 그 새벽에 북한산국립공원 야영장을 예약했다. 점심 때까지 남은 잠을 몰아 자고 대충 짐을 꾸렸다.
다음 날이 월요일이어선지 야영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말에는 오픈런을 해야한다는 신규 야영장이지만 이날은 서너 동 텐트가 듬성듬성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나는 후딱 텐트를 치고 포장해 온 회를 뜯었다. 그렇게 저녁을 해결하고 나면 이제 또 할 일은 잘 준비밖에 없다.
반경 10미터에 아무도 없으니 홀로 자는 편안함은 유지되면서도 멀찍이 텐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 속에서 같이 자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전감을 느낀다. 이런 원시 생활 체험에서 다시 단잠에 빠져든다. 알람도 필요 없이 떠지는 눈이 맑기만 하다.
사무실까지 차로 40분. 이 정도면 잠자러 올 만하다. 북한산에서 광화문까지 오면서 단풍 구경을 실컷 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커피도 한 잔 뽑아 마시는 여유까지 부렸다. 오로지 누군가와 잠자기 위한 여정. 모르는 사람과 자려고 밖으로 나간다. 불온한 상상을 자극하는 이 문장이, 나에겐 사나운 꿈자리가 두려워 잠들지 못하는 밤을 달래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