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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옳은 Mar 13. 2022

눼에? 투표사무원이 처음이라구요?

새내기공무원을 위한 선거업무 꿀팁

선거 업무는 처음이라 불안하고 걱정되는 공무원을 위한 팁을 준비했다. ​저장해두었다가 6월 지방선거 때 써먹기를!

출처 unsplash

총선, 대선, 보궐선거까지 나름 산전수전  겪은 4년차 공무원이 알려주는, 매뉴얼과 교육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선거 업무 꿀팁이다.




겹겹이 따뜻하게 입기

이번 대선 사전투표와 본투표 날씨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에 되게 따뜻했는데?”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이고 있다.

3월 일교차는 정말 매섭다. 선거 사무원은 맡은 역할에 따라 오전 4시 30분~오전 5시까지 투표소로 나와야 한다. 일반사무원이 아니라 투표대행사무원이라면 투표가 끝나고 투표함을 인계하러 가야하는데 밖에서 대기할 때 춥다. 정말 춥다. 이번 투표는 확진자 투표가 끝나고 인계까지 마치니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장장 16시간동안 밖에 있으려면 보온에 신경써서 옷을 입어야 한다.   ​


나 뿐만 아니라 투표소 내에 다른 사무원 분들도 문을 열어놓은 공간 안에 계속 앉아있으려니 많이 추워하셨다. 핫팩을 잔뜩 가져갔는데 금세 전부 다 떨어졌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계속 찾으셨다. 온수가 나오는 시설이 아니라면 커피 포트를 챙겨가는 것도 좋다.

본투표 날 기모가 있는 맨투맨과 보온성이 좋은 양말, 숏패딩을 입고 실내에서 근무를 했는데도 추웠다. 얇은 옷을 겁겹이 입고 무릎담요를 챙겨가는 걸 추천한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말기

투표 시간은 오전 6시-오후 6시이고 본투표 때 확진자 투표 시간까지 합하면 13시간 30분이다. 이 시간동안 투표 사무원은 교체되지 않는다. 중간에 교대로 잠깐 식사를 할 때 빼고는 계속 같은 업무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전투표 때 우리 투표소는 이틀 동안 관내 선거인만 6,000명이 넘게 왔다. 본투표 때는 1,700명 정도가 왔다. (우리 투표소 선거인이 많은 편이기는 하다.) ​


이 많은 인원을 상대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마스크 잠깐 내려주세요, 여기 서명해주세요, 저쪽으로 가시면 돼요.” 계속 높은 텐션으로 목소리를 높여 말하다가는 오후까지 버틸 수 없다. 잔잔하게 말해서 목소리를 아껴야 한다.

투표소 내부가 소란스럽다면 손동작을 이용하면 된다. 마스크 내리는 제스처, 서명을 하라는 제스처 등등. 그렇게 해도 목은 아플 거다. 선거 업무를 끝내고 자기 전에 영양제라도 하나 먹고 자는 걸 추천한다.  



민원 해결은 조용히, 신속하게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해도 민원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부분에서도 민원이 생긴다. 소란스러워질 참이면 당황하지 말고 우선 투표관리관인 팀장님을 찾자. 8,9급 조무래기들이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다 관리관님의 설득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


선거는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빠르게 조용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민원인이 요구하는 사항을 해결해줄 수 있는 부서나 담당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좋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요구를 하면 당황해서 원래 알고 있던 해결 루트도 까먹기 마련이니 연락책은 한 곳에 따로 정리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ex. 해당 자치구 선거대책반 연락처, 선관위 연락처, 해당 동 주민센터 연락처 등)



투표함 인계는 최대한 빠르게!

우리 구는 관내 모든 투표소의 투표함이 한 곳으로 모인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팀장님이 아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냅다 갔는데도 줄이 이미 있었다. 그래도 빠르게 도착한 축에 속했는데, 그 비결은 역시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에 있다.

잔여 투표용지 보관함, 도장 보관봉투 등과 다르게 투표록 보관 봉투는 양면 테이프가 부착되어 있지 않다. 이 봉투에는 선관위 테이프를 별도로 오려서 붙여야 하는데 봉투 길이에 맞게 테이프를 미리 잘라놓으면 빠르게 마감할 수 있다. 테이프를 붙인 뒤 간인을 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투표록 사이에 간인을 한다거나 특수 봉인 스티커에 미리 서명을 해두는 등 디테일한 부분도 놓치면 안 된다. 미리 해둘 수 있는 건 해두는 게 빠른 퇴근의 비법이다.  



포지션 별 알아둘 것

등재번호 확인

발열체크를 하고 입장하면 등재번호를 확인한다. 어떤 선거인들은 집으로 배송 온 등재번호를 종이 채로 가져오거나 외워온다. 그러면 지체할 필요 없이 곧바로 명부대조를 하러 들여보내면 된다. ​


하지만 대부분은 "등재번호가 뭐에요?"라고 하기 때문에 선거인 명부를 입구에 두고 번호 확인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해당 투표소에 등재된 선거인이 맞다면 등재번호를 적어주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된다. 이때 번호를 적어줄 작은 포스트잇 같은 여분 종이가 필요하다. 대행사무원이라면 꼭 챙겨가길 바란다.  

간혹 다른 투표소로 가셔야 하는데 잘못 온 경우가 있다. 열 명 중 한 명은 꼭 그러신다.

구청 홈페이지나 중앙선관위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름, 생년월일을 입력했을 때 어느 투표소로 가야 하는지 검색할 수 있다.(등재번호 찾는 자리에 두 명이 앉아야 하는 이유다.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올바른 투표소를 검색하는 걸 도와주면 좋다.) 구청 홈페이지에 결과가 안 나온다면 해당 구에 등재되지 않은 주민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로 들어가야 한다. ​


명부가 확정되는 시기가 선거 한 달 전쯤이다. 그 날짜 이후로 전입신고를 했을 경우 새로 이사한 곳에 명부가 등재되지 않는다. 즉 본투표 날 투표를 할 수 없다. 전입신고 날짜가 애매한 경우 꼭 사전투표를 하시기를.


선거인명부대조

<사전투표>

단말기가 알아서 신분증을 인식해주니 걱정할 게 없다. 간혹 신분증을 여권으로 내미는 선거인의 경우 수기로 인적사항을 입력해야 하는데 모두 영어로 적혀 있으니 당황하지 말 것... (생년월일에서 JUN을 JAN으로 잘못 읽고 "1월생 아니세요?!"라고 했던 나...) 이름의 스펠링을 알맞게 읽은 것인지 선거인에게 한번 확인하고 입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선자님이 김순자님으로 읽힐 수도 있다.

신분 확인이 끝나면 손도장을 찍거나 펜으로 서명을 받는다. 우리 동은 선거인이 너무 많이 와서 빠르게 진행해야 해서 웬만하면 선거인께 손도장을 요청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들어오는 분들께는 내 앞에 서시는 순간 "손도장 찍을테니 엄지 손가락 하나만 장갑에서 쏙 빼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려 준비시간을 줄였다.

<본투표>

방역 때문에 끼는 라텍스 장갑이 종이를 잘 넘기게 도와 준다. 종이를 계속 펼쳤다 닫았다 해야 하는 이 업무는 장갑을 껴야 손맛(?)이 살아난다.

엉뚱한 사람 칸에 서명하지 않도록 주의하면 큰 어려움이 없는 업무다. 설령 잘못 서명한다 해도 해결방법이 다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정정 방법은 투표대행사무원이나 투표관리관이 알고 있으니 조용히 손을 들어 정정할 게 있다고 부르면 된다.(매뉴얼에 다 있음)


투표용지 교부

<사전투표>

단말기 앞에서 신분 확인이 끝나면 같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투표 용지 출력기에서 해당 선거인의 용지가 출력되어 나온다. 인쇄 상태만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교부하고 끝. 보통은 민간인 투표 사무원분들이 보조처럼 해주시는 업무라서 공무원이 이 역할을 맡을 일이 잘 없다.

<본투표>

선거인명부대조가 끝나면 선거인이 투표용지를 받으러 온다. 이건 선관위가 주는 매뉴얼에도 적혀 있지만, 투표 용지 끝 일련번호 부분을 일정 수량만큼 미리 잘라놓으면 된다. 그래야 빠르게 용지를 선거인에게 줄 수 있다.


투표함 지킴이

투표함 앞에 앉아서 선거인들이 용지를 제대로 넣는지 확인하는 역할이다. 참관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제법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건 투표소 배치나 분위기마다 다르다. 다른 업무에 비해 큰 동작이 없어서 심하게 지루할 수 있다. 가끔 선거인들이 몇 번 접어서 넣냐고 했을 때 대답해주고, 출구를 알려주는 것만 잘 하면 된다. ​​


투표대행사무원

일반사무원과 대행사무원의 포지션 차이는 완전 극명하다. 일반 사무원은 한 가지 업무를 오랜 시간 반복해야돼서 체력적으로 지친다. 대행사무원은 매뉴얼을 숙지하고 민간인 투표사무원과 참관인을 챙기는 등 큰 틀에서 신경써야 할 것이 많다. 대신 투표관리관님만 잘 만나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경찰 분들과 호송 기사님 수당을 잘 챙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투표록 작성이다. 잘못 기재한 부분은 관리관 도장을 찍어서 수정하면 되는데 이렇게 수정한 부분이 있으면 투표함 인계받는 주임님이 더 꼼꼼히 검토하신다. 그러면 시간이 지연되니까 처음부터 깨끗하게 틀리지 않고 쓰는 게 가장 좋다.




공무원으로 지낸 세월이 쌓이면서 느끼는 게 있다면 업무까리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거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말라는 뜻이다. 하다보면 금세 손에 익는다. 피곤과 지루함만 경계하고 무탈하게 하루가 끝나기만을 바라면 된다.

대선보다 지방선거가 갑절은 힘들텐데… 지방선거가 끝나면 풍수해 대비를 해야할텐데… 풍수해 대비가 끝나고 가을이면 좀 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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