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기사님 뒤에 붙어 있는 모니터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대학을 다닐 때 창업경진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우승 팀은 실리콘 밸리에 보내주는 파격적인 승전이 걸린 대회였다. 모니터에는 그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경쟁했던 업체 대표님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대회가 열렸던 학교 강당 대기석에 나란히 앉아 다른 팀 스피치를 같이 듣던 게 불과 4년 전이었다.
나는 그 대회를 마지막으로 팀에서 나왔다. 대회를 염두에 두고 결성된 팀이 아니라 선배가 만든 진짜 회사라서 패키지 디자인, 투자 IR피칭 등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었다. 책임감도 그만큼 무거웠다. 내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대회가 끝나고 도망치듯 휴학을 했다.
우리 팀과 경쟁했던 그 대표님은 계속 아이템을 발전시켜 인터뷰를 하고 계셨고 나는 야근 후 퇴근 버스에서 지친 눈으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주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진부한 클리셰 같았다. 꿈에서 도망친 20대의 뒤통수와 그의 시선이 닿는 모니터가 대비되어 오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씬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무대 위에서 주어진 시간은 딱 3분이었다. 비록 대회가 끝나면 팀에서 나가기로 했지만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너무 떨려서 심장이 머리통과 이어진 것처럼 얼굴이 얼얼하게 두근거렸다. 떨려서 죽을 것 같은데 그 심정이 너무 중독적이었다. 앞으로 자주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직감이 왔다.
큰 자산이 되는 경험이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발표 좀 하는 애’가 되어 PT 공모전, 토크쇼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되었고, 재미있어서 자꾸 하다보니 저절로 인정도 받게 됐다. 어떻게 발표를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생겼고, 더 좋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잘 만든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로 평생 먹고 살 자신이 없었다. 재미는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배웠으니까. 그때는 지금보다 그릇도 작아서 스스로를 믿어주지 못했다. 젊을 때야 에너지를 끌어다 쓰며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몇 살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만두기로 한 그때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차라리 도망치고나서 내가 한 다른 선택들에 당당하면 모르겠는데 계속 어색하게 내 선택을 설명하게 됐다.
여전히 재미가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선택 역시 안정을 100%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지난 선택을 통해 배웠다. 안정의 끝판왕인 공무원을 몸소 해보니까 알겠다.
깊고 넓게 깔려있는 성향 자체가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앞으로 하는 선택들도 리스크가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마다 타고난 그릇은 다르게 생길 수 있으니까 이 성향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을 거다.
중요한 건 내 그릇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라는 거다. 다 구워져서 나온 그릇이 아니다. 바닥이 넓고 묵직한 모양새를 바꾸기 어렵다면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참이다.
버스 안 모니터든 TV든 유튜브든, 아는 사람이 나오는 걸 멀뚱히 보고만 있는 걸로 이번 생이 끝나게 하지 않을거다. 아는 사람이 나오면 반가워하고, 축하해줄 수 있으려면 내가 내리는 선택들에 자신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