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
한 달 간 코로나 재택치료지원반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보통 차출은 길어도 일주일 내외인데 한 달이라니.
하루 13시간 근무라는 것도 압도적이었다. 아침 8시 출근, 저녁 9시 퇴근으로 주 6일을 일해야 한다. 이렇게 단순히 계산하면 이번 달 초과근무 시간만 103시간이다. 뉴스에서 보기를 코로나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너무 힘들다며 말한 초과근무 시간이 이 정도를 웃돌거나 뛰어넘던데... 아득해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온 사방에서 전화벨이 울려왔다. 원래 근무하는 주민센터도 전화가 제법 많이 오는 편인데 전화기 수가 훨씬 많다보니 사방으로 퍼지는 소리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코로나 재택치료지원반은 말 그대로 재택치료 중인 환자들을 지원하는 부서다. 나는 약과 건강관리키트 배송 총괄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 외에도 이 부서는 확진자 이탈자 관리, (보건소를 도와) 격리통지서 발급, 공동격리자 지정 요청 등을 한다.
이곳에 전화를 하는 분들 대부분이 흥분해있거나 화가 나 있거나 짜증이 나 있는 상태다. 보건소는 전화를 안 받지, 몸은 아프지 좋은 말이 안 나올 법 하다. 이해는 하지만 통화가 끝나고나면 기운이 다 빠진다. 지나치게 무례한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 최대한 민원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지만 도를 넘는 전화에 누군가 언성이 높아지면 모두 숙연해진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같이 근무했던 팀장님은 나한테 "몸은 당연히 피곤할 것이고, 마음은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이렇게 물어봐주는 분은 또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 초반에 좀 울었다고 했다. 맡은 바는 너무 막중하고 시간은 도저히 지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고 했다. 팀장님은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해주셨다.
의미없는 노력은 하지 말라는데…
어차피 도망 못 갈 거, 의미라도 부여해볼까…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출근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어떻게 하면 덜 아까운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주어진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내가 바뀌면 된다던데 한번 해볼까.
든든한 인맥을 얻었다
이 부서 총괄 책임자분들과 같이 근무하는 직원 분들 모두 일을 정말 잘 하시고 인품도 훌륭하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다. 이런 분들과 동료애를 넘는 전우애를 만들었다.
세속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경력이 짧고 아는 직원도 적은 나에게는 이런 인맥 확장이 좋은 기회다. 사내에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하기 수월해지니까.
속성으로 공감력과 상상력을 키웠다
꼭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상대해본 경험은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다.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중년, 어린 아기를 혼자 돌보는 어린 애기 엄마,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재난 상황을 그려볼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다루는 시스템의 핵에서 일하는 경험, 아무나 못한다
지금 코로나19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다. 나는 그 최전선에서 일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공공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되고 어떻게 돌아가는가. 시민들은 무엇을 원하고 정부는 어디까지 해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최일선 지자체에서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니까 정신 승리도 되고 책임감도 다시 차올랐다.(정신 승리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
‘나는 남들이 쉴 때도 일해,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 쏟아지는 민원에 지쳐…’ 까지만 생각하면 내 한 달이 너무 아깝다. 상황을 못 바꾸면 나라도 바꾸어야지.
모든 상황에 얼토당토 않은 의미 부여를 하고 알 수 없는 뽕에 차올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관점을 바꾸는 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체득한 기록을 써보고 싶었다.
힘든 시기지만 모두 잘 버텨보자구요, 우리. 코로나 업무 보시는 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