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에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들어오는 게 장땡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진짜일까?
대학교 4학년 때 덜컥 휴학을 하고 덜컥 합격을 했다. 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우선 임용 유예를 했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다가 기말고사를 치기 싫어서 인사팀에 전화했다. 저 발령 좀 내주십쇼! 그 때가 10월 중순 쯤이었다. 인사팀에서는 11월 1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했다. 2주만에 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이제 28살, 8급이 되었다.
발령 첫 해, 24살이라는 나이가 너무 불편했다. 다른 직원 분들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많이 서투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어도 역시 직장과는 차이가 났다.
외부에서 봤을 때도 썩 미더워보이지는 않았나보다. 한 영업사원이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길래 정책 방향성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렸는데 말이 다 끝나니까 나 같은 인턴 말고 정규직 ‘진짜’ 공무원과 말하고 싶단다. 자기도 공직에 좀 있어봐서 잘 안다는 말을 한 세 번은 하던데 어느 나라 공직에 계셨던걸까. 공무원에 인턴 제도 같은 건 없고 내가 그 진짜 공무원이며 다른 진짜 공무원 분들도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답했다.
아직도 ‘아가씨’, ‘신규’, ‘초짜’ 말고 제대로 된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민원인들은 많다. ‘선생님’ 또는 ‘주무관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기대할 짬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어리다고 깐히 보는 건 상대의 잘못이지만 스스로도 아쉬움이 있다. 좀더 나이를 먹은 다음 대화를 하고 인맥을 쌓는 게 능숙해졌을 때 입직했다면 업무를 할 때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 구는 9급에서 6급이 되는 데까지 정말 빠르면 12년, 보통은 15년 내외가 걸린다. 자치구는 6급이 팀장인데, 내가 계속 공직에 있는다면 40살 쯤에는 팀장이 된다.
9급 지방직 공무원이 꿈꿀 수 있는 자리는 4급 국장까지다. 6급 팀장 승진 이후에 5급 과장, 4급 국장 총 2계급 승진이 가능하다. 정년이 65세라고 하면 40세에 팀장이 되고나서 25년동안 2계급 승진만을 바라보며 근무하는 거다. 정년이 70세로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40세에 내가 팀장이 되어 만난 신규 직원이 30년차가 될 때까지 더 일해야 한다.
20년, 30년 근무하신 상사 분들이 자녀에게 공무원을 권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보람이 대단히 있는 직업도 아니라서 승진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떠안고 수 십 년의 세월을 구청을 떠돌며 지내는 삶이 쉽지 않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승진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업무들이 있다. 40번의 선거를 말하고 80번 눈 치우고 60번의 당직을 서야 한다. 공무원만의 비밀번호 486…
얼마 전 후배 한 명이 ‘이제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볼까 고민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후배 나이는 27살, 사기업에서는 이직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쪽 판에서는 ㄱㄴㄷ 갓 뗀 어린이다. 1-2년 공부하다 들어와도 늦은 나이가 아니라 오히려 적당하다.
보통 신규 직원분들 연령대는 28-35살이다.(정말 나이대가 다양하다.) 20대 비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고 우리 구에서 체감한 바를 말하자면 그렇다. 40대, 50대 분들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언제나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몇 살이든 상관없이 늘 땡큐다. 같이 지내기에 이상한 성격만 아니면 엑셀, 한글 좀 못해도 하등 상관없다.(나이를 내세우며 못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면…)
이른 나이에 공무원이 되어 본 사람의 입장에서 글의 제목에 답해주자면,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공무원이나 할까.”라는 마음이라면 때가 아닌 거고, 공무원의 단점보다 장점이 더 탐나는 때라면 적기라고 할 수 있겠다. 공무원도 남의 돈을 버는 일이니 언제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서든 후회가 없지 않을거다.
다만 가장 후회를 덜 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선택해도 절대 늦지 않은 직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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