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이 이름을 물어볼 때 공무원이 하는 생각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자기 이름만큼 그 사람에게 달콤하게 들리는 건 없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에서는 그게 달콤하게 들릴 리 없다.”고 말한다.
종종 민원 상담을 할 때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석연찮은 대답을 드릴 때 그런 질문을 받는다. 안내를 틀리게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맞을 때도 이름을 말하는 건 꽤나 부담스럽다. 여러 번 상황 설명을 다시 하지 않고 이어서 안내를 받고 싶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병든 분들 중에서 밑도 끝도 없이 트집을 잡기 위해 이름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일의 전조 증상에 직원 이름을 묻는 질문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말씀드릴 때는 늘 이름 앞에 띄어쓰기 하나가 들어간다. “네, 저는 (숨을 훅 들이쉬고) ㅇㅇㅇ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나서 “ㅇㅇㅇ이라고? 내가 신고할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라거나 “ㅇㅇㅇ씨, 이따 2시에 전화할거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놔.” 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둘 다 술에 많이 취하신 분들이었다.
철학원 가서 비싸게 주고 지은 이름이랬는데… 그런 분들께 이름이 불리고나면 가로로 접었다 세로로 접었다하면서 이름이 꼬깃꼬깃해지는 기분이다.
이름이 꼬깃해지려다가 예쁘게 펴지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화는 코로나 관련 문의 전화를 여섯 번이나 준 중년 남성 분이시다. 상황이 꼬여 “처리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니 이따 다시 전화주세요.”라고 깔끔한 결말이 나지 않은 채 다른 직원들과의 전화를 5번 한 다음에 나와 6번째로 연결된 분이셨다.(정말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는 했다.)
몇 번째더라도 나는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니 신원 확인 차 이름을 여쭈어봤다. “ㅇㅇㅇ입니다만… 제가 지금 여섯 번째 전화를 하는데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확인해야 합니까?” 헉. 여섯 번째라니. 안 그래도 이곳은 전화 연결이 어려운 부서인데. “허어어어억. 너무 죄송해요. 어쩜 좋아. 여섯 번이나요? 아이고야.” 내 반응에 민원인 분이 더 놀라시는 것 같았다.
억지로 과장해서 한 반응은 아니고, 순간 엄마 생각이 나서 그랬다. 인터넷을 잘 못하는 우리 엄마도 이렇게 전화만 붙들고 기다리는데, 심지어 이 전화는 당장의 건강 상태과 직결되는 창구인데 본인 확인을 여섯 번이나 거치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다행히 그 분이 필요한 대답을 나와의 6번째 전화에서 모두 해드릴 수 있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아, 저는 ㅇㅇㅇ입니다.” “아, ㅇ가에요? 내 친구도 ㅇ가인데~ 허허. 고마워요.”
저때 나도 진심으로 죄송했고 그 마음을 민원인 분이 알아주시는 분으로 쿵짝이 잘 맞았기 때문에 기분좋게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긴장해서 시작한 대화가 부드럽게 전환되어 웃으면서 끝나는 상담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진심으로 죄송해해도 알아주지 않는 분도 계시고 나도 늘 온몸을 내던지는 사과를 할 수는 없기에 앞으로 또 만나기 어려운 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싸게 주고 지은 내 이름에는 ‘넉넉할 유’ 자가 들어간다. 이름값을 하려면 일에 치여 적당히 응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내몰아두지 않는 넉넉함, 기분 좋게 끝난 응대를 기억해두고 힘들 때 꺼내 쓸 수 있는 메모리의 넉넉함 등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잘 구비해두었다가 나와 같은 성씨의 친구를 가진 분처럼 마음씨가 넉넉한 분들을 또 만나게 되면 비로소 이름값을 톡톡히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여전히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띄어쓰기가 들어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