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역사 선생님을 유독 좋은 분들만 만나왔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과목도 좋아하게 되었다. 당연히 최태성 선생님은 나의 셀럽이셨다. 얼마나 진심으로 역사를 가르치시는지 가슴을 후벼파듯 느껴져서 최태성 선생님을 따라 역사 선생님이 되기를 꿈꾼 적도 있었다.
운좋게 고등학생 때 최태성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학교에 EBS 선생님들이 방문하는 행사가 열려서 당시에 유명한 선생님들이 모두 오셨다. 선생님들을 보러 몰래 야자실을 빠져나왔다가(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길을 잃은 최태성 선생님께 길 찾는 걸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학교 건물이 꽤 많고 커서 구조가 복잡해서 얻을 수 있던 기회였다.
그때 선생님께 "좋아하는 일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 중에 무얼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도처에 깔려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진부한 말이지만 고등학생이던 2010년대 당시의 나에게는 정말 어렵고 생소한 말이었다. 가까운 어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는 분이 없었고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어른을 본 적도 없었다. 수많은 역사 선생님 중에서 최태성 선생님이 운 좋게 EBS 강사가 되어 다른 선생님들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저런 말씀을 하실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날 최태성 선생님은 왜 좋아하는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다. PMP(그당시 태블릿 노트 같은 기기...) 속으로 보던 선생님의 눈동자는 그 속에서나 바깥에서나 진심이 한가득이었다. 싸인도 받고 반 친구들을 위한 응원 영상까지 찍어달라는 터무니없는 부탁까지 드렸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야자를 째고 나와서 이런 걸 묻는 너는 성적이 높은 편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하셨으려나. 그래도 밤 12시 30분까지 야자를 시키는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른의 말씀을 꼽으라면 최태성 선생님이 해주신 그 조언이었다.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그 날이 종종 떠올랐다.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엇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자기 계발 유튜브와 강의와 책을 보면서도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두면 뭘 하고 싶은 건지 뾰족하게 알 수 없었다. 적당히 똘똘하고 적당히 말을 잘 듣고 적당한 성적을 갖고 공무원이 되어버린 20대 청년은 야자실을 도망쳐 나와 최태성 선생님 앞에 나타날 용기라도 있었던 10대가 차라리 부러운 지경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넘어 질투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뭉툭해질대로 뭉툭해져버린 나의 꿈, 감각, 욕심 따위의 것들은 '질투요? 화투도 아니고 질투요?' 라고 멍청하게 웅얼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지, 그사람이 하는 무엇을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직시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겸직 금지 조항이 있는 공무원은 무언가 해보고 싶어도 취미 정도로밖에 할 수 없었고 이건 생각보다 의욕을 강하게 막아서는 족쇄였다. 질투나는 대상을 정말 찾아버린다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못하는 걸 저 사람은 하고 있으니까.
여러가지 일이 겹치면서 이런 생각은 속을 곪게 만들어버렸다. 병을 얻고 휴직을 하고서는 집에 틀어박혀 내가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는 걸 속속들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꼬꼬무 프로그램을 보는 걸 좋아하니까 범죄 심리학을 공부해볼까, 달달한 걸 좋아하니까 마카롱 만드는 사장님이 되어볼까,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볼까. 애석하게도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질투가 나는 분야를 찾기는커녕 어느 것 하나 깊게 좋아하는 게 없는 밍밍한 취향의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복직해야 하는 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휴직했다가 복직한 밍밍한 공무원 1'이 될 뿐이었다. 이럴려고 휴직한 게 아닌데. 그렇게 복직이 하기 싫다면 먹고 살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한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내 감각을 발휘할 수 있고 혼자서 하는 독립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도달했다. 그게 무슨 일을 할 때 가능한지 찾지 못한 그 시점에 우연히 화과자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이거다! 싶다. (워낙 다른 글에서도 자주 다루었고 다루게 될 이야기라 이쯤에서 생략...)
화과자를 만드는 사람에게 질투가 난 게 아니라 화과자를 매개로 내가 원하던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화과자를 만드는 사장님들을 보니 나도 노력하면 그 비스무리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과자 사업이 망했을 때 날리는 돈이 생각보다 무지막지하지 않다는 것만 믿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막상 해보니 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을 발견하게 됐고 몇 달 전의 나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분야에 욕심이 생긴다. (ex. 앙금을 더 잘 다루고 싶다는 욕심)
그래서 오늘 글 제목 "질투나는 일을 찾고 싶으신가요?"에 대한 대답은 "그거 한방에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도 과일을 재배하는 사람이 있고 이걸 떼다 파는 사람이 있고 이걸 수출하는 사람이 있고 수출을 할 때 통역하는 사람이 있었다. 영의정조차도 직접 이 일을 해보지 않은 이상 자세한 구조와 노하우를 알 수 없었을 거다. 마구잡이로 꿈꾸는 분야에 덜컥 덤벼보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데는 다 좋아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기웃거리고 되뇌이기를 멈추지 말고 게속 타이밍을 노리면서 질투나는 사람의 작은 부분들부터 흉내내는 경험을 해봐야 조금이라도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막무가내로 뛰어든 이 씬은 역시나 완벽한 낙원은 아니다. 매출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도 하고 일이 너무 많으면 너무 힘들고 일이 너무 적으면 그것대로 너무 힘들다. 그래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았을 때 60% 정도까지는 질투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누가 "좋아하는 일이 뭐에요?"라고 툭 쳤을 때 1초만에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60% 정도만 좋아하는 일이라도 살만 한 것 같다. "역사는 최태성!"을 외치는 최태성 선생님처럼 "화과자는 ㅇㅇㅇㅇ!" 을 외치는 고수가 된다고 해도 화과자가 좋아 미치겠다는 말을 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 그저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느껴지는 상태로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법 질투나는 삶을 살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