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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Feb 09. 2021

혐오는 혐오고, 차별은 차별일 뿐

불편을 느꼈다면, 이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성곽길을 걷는 일이다. 


입춘이 지나고, 바람이 더이상 차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언덕을 올라 성곽길을 걷는다. 불빛을 따라서 하염없기 올라가다가, 공원 건너 한성대 간판을 보고, 서울에 너무 많은 집이 있구나, 라는 생각하고, 산책 나온 멍멍이들의 가소로운 뒷발질도 훔쳐보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들이 적당히 간격을 유지한 채 걷는 모습을 보는 그런 일들.   


어느 해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성곽길을 올라가는 길에 어느 집에서 들리는 재즈 음악을 듣고 가만히 서 있다가, 밖에 나온 집주인과 마주쳤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그곳에 이사 온 지 고작 두 달. 


(작은 방이 딸린) 사무실로 쓰이던 방을 덜컥 계약하고, 사무실을 작업실로 쓰고 있다고. 

묻지도 않은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그의 등 뒤로 천장에 닿을 듯한 큰 몬스테라를 보면서 '무언가를 기르는 것은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어느 집의 자개장이거나 문이었을 나무를 상판으로 쓰는 테이블에서 위스키와 홍차를 얻어 마셨고, LP판을 구경하다가, (그 공간과 음악이 근사해서) 나한테도 이 공간을 대여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 거의 없다고, 아무 때나 내킬 때 어느 시간이고 편하게 와서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두 달 정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그 공간을 이용하였다. 성곽길을 산책하고 책을 보고 글을 쓰거나 하는 시간을 보냈고, 가끔 그가 놓고 간 위스키나 홍차를 마시기도 했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사이-

그의 고향이 목포이고, 부모님이 목포에서 외국인 대상 숙박업소를 하고 있는데, 그곳에 손님들이 놓고 가는 술이며 홍차를 자신이 가져온다는 사실과 10개의 직업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며, 한때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광고를 찍는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틴더로 제주도에서 한 여자를 만나서 짧고 지독한 연애를 한 뒤 열병을 앓았다는 사실도.  그렇게 한 계절, 꽤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생일을 열렬하게 축하해주고) 그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가령 자신 말끝에 시종일관 '너는 어때', '그때 너는 뭐했어?'라고 묻는 사람이어서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와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불편한 기억만 남는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 혹은 불편을 장면화 한다면 그날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서촌에서 일을 보고 있던 날이고, 동시에 그날은 우리가 작업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가 서촌에서 친구와 술을 한잔 하고 있다고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해서 그곳에 들렀다. 

나는 정향이 은은하게 나는 따뜻한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2차로 청하를 마셨는데, 혼자서 청하를 세 병쯤은 먹은 것 같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지만 술자리는 흥겨웠고, 즐거웠고 시종일관 웃었지만 뭔지 모르게 불편했다.




2차를 정리하고 나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만취한 그의 친구가 맥락 없이 갑자기 심하게 다리를 저는 흉내를 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한테 꽂히는 것을 느끼면서 웃었다. 두 남자의 웃음소리에 순간 술이 확 깼다. 나는 먼저 가겠다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잘 들어갔는지, 별일 없는지 등등 혹시 기분 상할만한 실수를 자신이 한 게 아닌지 따위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불편한 감정이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아직도 낯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어떤 미사여구나 명분을 붙여도 명백하게 혐오는 혐오일 뿐이고 차별은 차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몰랐을 때는 불편의 이유를 몰랐고, 그런 감정이 밀려올 때는 못 들은 척 혹은, 괜찮은 척했는데 이제는 그러기가 어렵다. 


어떤 것을 알게 된다는 것, 불편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때부터는 긴 싸움이 시작된다. 화를 낼 것인가. 불편을 표현할 것인가.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로 그 순간을 참은 방관한 나에 대한 짙은 혐오가 오랫동안 남는다.

혐오의 방향이 나를 향할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아직도 나는 어렵고, 방법을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그 순간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혐오는 혐오고 차별은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왜 혐오고 차별인지 설명할 용기가 나에게 생길까.불편하다, 라는 감정이 들 때 말하는 용기. 불편을 말하지 않은 그 순간의 나를 미워하지 않을 날이 오긴 올까.


결과적으로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좋았던 시절을 좋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좋음과 낭만과 친절이 점철된 날들이 반복됐지만 그 끝에 불편만 남았으니,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무언가를 강탈당한 것 같은 억울한 느낌이 든다. 





몇 해 전에 나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산길을 달린 적이 있었다.


강원도였고, 야생동물 출몰이 잦은 지역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순간, 바닥에 죽어있는 야생동물을 보고 너무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가 성호를 그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짧은 성호를 그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이 좋아지는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장면을 기억한다. 덕분에 나에게 그날은 납작하게 눌려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그런 털 짐승의 사체를 처음 본 날이 아니라,  길 위의 생명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날로 기억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짧은 순간, 길 위의 동물의 삶에 명복을 빌어주는 그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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