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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Jul 29. 2021

페미니스트가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임지은 작가의 [연중무휴의 사랑] 중 한 챕터에는 '페미니스트가 남성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이 있다. 그리고 작가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낙관을 첨부한다. 


이글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페미니즘을 반이성, 혹은 남성의 대립어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그 끝에 나의 지난한 과거를 복귀하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의 연인을 만나기 전에 적당히 내 성향을 숨겨왔다. 

드러내고 다니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상대에 따라서 조금 더 열어도 된다면, 몇 가지 말을 덧붙이는 정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 정말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일, 내가 뱉지 못하는 말을 하는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마음과 동시에 갑자기 화가 나고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너'도' 페미니스트야?"라는 질문을 들으면 보조사 '도'에 너무 많은 걸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버튼이 눌릴 수밖에 없다. 상대의 질문 의도는 '지금', '우리'의 문제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지금 너와 나, 단순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게는 너무 지난하고 총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지만 질문자는 그 사실을 알리가 없다.   


상대를 안심시키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잠들기 직전까지 그 시간들을 곱씹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조금 더 강경하게 말할걸.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반문할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걸,  하지 못한 말에 대한 후회로 밤을 지새운다.  


지지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말할 뿐, 평상시에는 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침묵은 때론 방조나 다름없고, 심지어는 동조의 다른 이름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종종 서글퍼진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한 동안 '좋은 사이(?), 꽤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던 사람이 내 sns 계정과 내 지인의 게시물을 보고 

'너도 그런 쪽일까 봐 걱정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쪽'이라니. 뭐 불순분자 같은 거를 말하는 건가? 

 그쪽이 어떤 쪽이지? 이쪽이 아닌 저쪽, 우리가 아닌 저기 뭐 그런 건가. 


죽었다 깨어나도 너는 모르지. 

네가 말하는 거기, 그쪽이라는 표현 자체에 이미 차별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10분 내로 갈 수 있는 지름길 지하도를 포기하고 30여 분을 돌아가는 삶을.

오줌보가 터질 거 같이 괴로워도 화장실의 모든 구멍을 휴지로 막고 볼일 보는 삶을. 

엘리베이터를 탈 때 누군가가 따라 타면 유심히 누르는 층수를 확인하는 삶을. 

누군가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삶이 도처에 널려있고, 그런 것이 나한테는 일상이고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결국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 또한 여성의 범주가 아닌 세계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을 늘 인지해야 한다, 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서 

그와는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그저 그런 사이가 돼버렸다고 해야 할까.   



*


지금의 연인과 두번째로 함께 본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였다. 

(처음에 본 영화는 스탠드 큐브릭의 영화였다)

그 영화를 고른 것은 상대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연인 사이가 되고 처음으로 본 영화가 '델마와 루이스'인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의 추락'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포스터를 보고 

그가 속은 것이라 해도 나는 '어떤 기대'가 있었다.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싶어 하는 남성이라니,

(그렇지만 그건 내 착각이고 어쩌면 환상이었지만)


적어도 그한테는 그런 말들을 할 수가 있다. 


나도 많이 부족하고 모르지만, 내가 틀릴 때도 많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 달라는 게 아니라고. 

동등한 인간으로 봐야한다고 말하는 거라고. 

대상화하지 않고, 수단화하지 말고,  그냥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것뿐인데 

그게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 거냐고, 

이렇게 당연한 것들은 요구해야 하는 세상이 이상한 것 아니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고. 

그런 요구를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이미 왔다면, 혹은 온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도 있겠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들었는데.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이야기할 때, 투신을 한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거잖아요, 여성의 세계도 똑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장맛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낙관해도 되지 않을까, 조금 더 큰 환상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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