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주 오래전에 바로잡지 않은 나ㅠ_
발단은 티라미스 때문이었다,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도화선은 케이크이었다.
애인이 먹고 싶다는 말에 나는 스타벅스 어플로 예약을 하고, 우리는 케이크를 픽업 해왔다. 나는 일을 하고 애인은 옆에서 웹툰을 정주행 하고, 우리는 일상적이고 평온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줌 수업을 끝내고 케이크와 와인을 땄다. 애인은 바닥 말고도 중간에 빵이 있었는데, 라면서 우물쭈물했다.
자기가 생각한 티라미스가 아닌 모양이었다. “중간에 이거 다 원래 치즈야”라고 내가 단언했다.
결국 포크 질 몇 번에 빵이 나왔고, 애인이 것봐,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네, 몰랐네. 혹은 가벼운 사과도 하지 않았다.
거의 다 크림인 거지 뭐.라고 넘겨버렸고 그것을 도화선으로 우리는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나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무언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순간적으로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모면 혹은 회피 성향이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와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리곤 한다. 아주 얕게 아는 것도 잘 아는 것처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거나, 그럴걸, 이라는 상대에게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를 덧붙이기도 하지만 이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크고 작은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서 침묵하거나 진실을 바로잡지 않는 방식으로 거짓말들을 하면서 커왔고, 티가 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일에만 열을 올리는 유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노력과 말들로 유년시절 나는 유능하고 똑똑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곤 했다. 대학 입시 실패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가 졸업 때까지 평점 4.5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던 것은 공부에 대한 흥미나 학과에 대한 애정은 아니었다. 나는 다수의 인정이 필요했고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절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점이었을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상을 타거나 칭찬을 받아오면 업고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잔뜩 사주었다. 엄마는 부자도 안 부럽고, 세상 아무도 안 부러운데 공부 잘하고 똘똘한 애들 엄마가 가장 부러워. 오빠는 모든 사람의 기대에 흘러넘치게 부응하는 아이였고, 엄마와 아빠는 내 앞에서 더욱 조심했지만, 나는 자꾸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원에 와서 석사를 하고 박사까지 하게 된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리 고민해도 특출 난 게 없던 나는 ‘나는 특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내 효용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유아기 때부터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인정 욕구는 어느 한순간도 충족되지 않았다.
애착을 가졌던 지인들과 불쑥 멀어지거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털어주고, 정작 내게 사소한 위로가 필요할 때는 아주 작은 다독임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성인이 되어서는 더 잦은 빈도로 더욱 큰 박탈감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뭐든 잘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게 이상적인 상태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려고 나를 열심히도 속여왔다.
나는 나를 주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거나 슬픔이나 부정적 감정을 공유하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면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하나의 문제는 너무 많은 과거와 과오를 포함하고 있다.
겨우 고작 케이크 한 조각으로 관계가 틀어진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 쪽에 가깝다. 애인은 자주 종종 자신의 말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내가 자신의 감정을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주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리 관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모르겠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결국 나는 사소한 사건을 발단으로 외면했던 나의 오랜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긴 서사와 인과를 설명하면 나는 대체적으로 상대의 슬픔이나 분노를 이해하게 된다.
공감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드는 마음이라는 것은 대부분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내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정당한 기분이라고- 이렇게 시간 차를 두고 사과를 하게 되거나 잘못된 과정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지치고 소진된 나는 회피의 순간의 나를 많이 미워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너무 사소하지만 기원을 알 수조차 없는 거대한 문제들은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그렇고 그런 취약한 부분들을 감출 방법을 찾는데 온 생을 쓰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벗어나고 싶다.
이제는 이런 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더 화려한 포장지를 찾는 일은 멈추기 위해서 오늘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