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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Jul 01. 2020

고양이가 말을 걸어온다

밥 주던 새끼 고양이가 죽었고, 어디든 말하고 싶어서 적는 일기.

고양이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다수의 사람은 조심스럽게 혹은 아주 담담하게 고양이가 자꾸 말을 걸어온다고 했다. 왜 이제 왔느냐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놓고 간 물건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들킨 듯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고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누군가가 내 세계의 전체가 되면 듣고 싶은 말이 들리고 믿고 싶은 게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게 인간이 이야기하는 사랑이라는 게 아닐까. 막연한 그런 생각을 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줄 생각은 없었다. 노년의 이웃들은 동물을 불편해했다. 새가 둥지를 틀거나 고양이가 똥을 싸는 것을 싫어했고 발을 굴러서 그들을 내쫓았다.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보러 다니면서 동네 골목에 놓여있는 빈 물그릇 밥그릇 수를 헤아리면서 이 동네에는 좋은 이웃이 많은 곳이군, 각박한 곳이군 그런 점을 치기도 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 동네는 아주 강퍅한 동네가 분명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배가 부른 길고양이를 보고 외면했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비 예고가 있던 날, 자기 덩치보다 큰 쓰레기 봉지를 물고 가는 어미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날 마트 다섯 군데를 돌아서 고양이 사료를 샀다. 사람 손을 타서 나쁜 꼴을 당하거나, 밥그릇 채 빼앗길까 봐 일회용 봉지에 사료를 담아서 던져주기를 일주쯤.      

언제부턴가 셔터 소리가 나면 새끼 고양이들이 달려 나오고 어미도 그런 새끼들을 물고 돌아가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던져주고 차에 올라타곤 했다.       


그날은 분명히 이상했다. 고무 통 위에서 새끼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나는 야생에서 살아가면서 어쩜 이렇게 무방비할 수 있을까 싶어 한참을 가만히 보다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 고양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엄마 고양이가 곁에 있고, 나는 급히 나가봐야 했고, 내가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본가에 가 있는 이틀 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와서 고양이를 구조해야겠다고, 병원에 데려가서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건강해지면 입양을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박스와 수건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뒤졌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서 사료를 들고 나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빈 공터에 사료를 던져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안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자전거와 고무 통, 화분들을 치우고 주차장 뒤로 기어 들어갔다. 화분 사이에 경직돼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수건에 고양이를 싸고 사료를 조금 깔고, 박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언제부터 있었는지 엄마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나를, 죽은 새끼를 한참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 언니가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너희 언어를 못 알아들어. 네가 고무통 위에 올려놓았던 게 도와달라는 말인지 몰랐어. 정말 미안해. 말을 하지, 울기라도 하지, 못 가게 앞이라도 막지. 아가는 언니가 잘 보내줄게." 한참을 말하고 또 말했다. 어미는 눈을 몇 번 천천히 꿈뻑이고는 사료를 입에 문채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나도 그 자리에서 오래 서있었다.    


 

고양이의 언어를 나는 모른다. 그들의 생리를 모르고, 그들이 길 위에서 당하는 위협이나 너무 많은 질병에 대해 무지하다.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질 수 없는 생명에 손을 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앞섰다.


혹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병원비와 작은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면서, 순간의 선택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만약에 일을 미루고 병원에 데려갔다면, 애초에 사료를 주지 않았다면 같은 꽤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인간의 목숨을 질기고 모진데 여린 길 위의 동물들의 목숨은 약하고 나약해서 이렇게 쉽게 사라진다.


거의 이틀을 내 새끼를 잃은 것처럼 울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차고 셔터를 올리고 내릴 때마다 엄마 고양이가 마중을 나온다. 우리는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내가 사료 봉지를 던지면 엄마 고양이는 그것을 물고 한참을 나를 보고, 눈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길양이한테는 아직 챙겨야 할 아이가 있고, 아직 길 위에는 많은 생명이 있다.  


이 세계는 너희들이 살기에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만, 나는 가끔은 그런 것들을 모르고 살던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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