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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09. 2021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46/100

그때의 그 학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한 달간의 스페인 여행의 마무리는 바르셀로나였다.

다시 돌아온 바르셀로나는 처음 만났던 그 느낌과 사뭇 다르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까딸란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당연 타파스로 정해졌다. 한동안 다시는 못 느낄 스페인의 감성을 한껏 느끼고 갈 예정이었다.

식당은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 속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기다리는 순간도 즐거웠다. 종종 볼 수 있는 한국 여행객들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 남자가 왜 눈에 뜨였을까?

식당 한쪽에서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의 그는 한국인이 분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인을 발견해낼 수 있는 능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평소라면 절대 말 시키지 않을 우리였지만 그날은 왜인지 그 남자에게 말을 시켜보고 싶었다. 아마 이곳에서의 마지막이 너무 아쉬워서였을 것이다.

혹시 한국인이세요?로 시작한 대화는 우리의 차례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혼자 타파스를 먹으러 온 그 남자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합석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혼자 먹으면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없으니 아쉬웠는데 우리를 만나서 너무 기쁘다는 얼굴이었다.

멀리서 보면 한국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만큼 까만 피부의 남자는 생각보다 더 어린 학생이었다. 1년 정도 세계여행 중이고 이제 한 달 정도가 남았다고 했었나? 그의 까만 피부가 이해되었다. 타파스 여럿을 시키고 와인도 한병 시켰다. 그 학생은 스페인에 와서 와인은 처음 먹었다고 했다.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와인이 싼 나라로 여행을 왔지만 그에게 와인은 사치품이었던 모양이다.

와인을 마시며 한참을 대화하니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사실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지는데 아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 되려 부끄러움이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교 4학년을 휴학하고 1년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는 그 남학생은, 그동안 얼마나 본인이 틀에 박힌 삶 안에서 살아왔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다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고 또 취업하려고 열심히 살다 훌쩍 떠나온 여행에서 다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조근조근 말하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 마음 짠했다.

그 나이대의 방황이 얼마나 값진 것임을 시간이 지나고 뼈저리게 느낀 우리였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식사를 마치고 하몽도 한번 못 먹어 봤다는 그 학생을 데리고 2차로 하몽과 와인을 한병 더 마시며 우리의 마지막 밤, 그리고 그 학생의 그냥 그런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해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연이 만난 인연처럼 우리는 연락처 하나 교환하지 않고 그렇게 서로 갈길을 갔다. 간간히 그 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똑 부러진 학생이었으니 아마도 잘 살고 있을 테지. 마지막 날 잔액이 두둑하게 남은 교통카드마저 탈탈 털어 그 학생에서 주고 온 그 마음에는 그 학생도 우리를 간간히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하몽과 와인을 먹을 때 돈 없이 갔던 스페인 여행에서 우연이 만난 아저씨 아줌마가 하몽과 와인을 사줘서 그때 처음 스페인 하몽을 먹었었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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