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스 청바지가 유행을 선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용돈으로 고가의 청바지를 모델별로 사모을 수 있는 동기들이 부러웠지만 여윳돈이 생기거나, 돈이 없어도 시간이 된다면 화방에 갔다. 그림을 늦게 시작한 만큼 다양한 재료를 써보아야 제 때 과제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나이가 든 지금도 패션과 코스메틱 브랜드보다는 파버카스텔, 까렌다쉬, 홀베인, 윈저 앤 뉴튼 같은 미술 재료의 브랜드 이름이 더 친근하다.
어느 날 그림책에 들어갈 그림 재료를 사러 화방에 가보니 그 사이에 재료값이 많이 올랐더라. 구매할 재료를 담을 빈 바구니를 들고서 잠시 통장의 잔고를 헤아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엇, 20년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하고 놀랐다. 갓 스물을 넘은 앳된 성인이 아닌, 누가 보아도 어른인 시기가 된다면, 재료쯤이야 돈 생각하지 않고 넉넉히, 마음껏 구매하며 살 줄 알았는데... 마흔이 되었음에도 궁핍함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며칠간 마음이 힘들었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을 때면 작가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림 작가입니다.'라는 말 대신 '그림 그려요, 디자인도 하고요...(점점 목소리가 줄어들다가 잠시 침묵) 이것저것 합니다.'라고 소개를 급히 마무리하는 편이다.
퇴사 후 10년 넘게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지내보니, 작가라는 직업은 땅 속 깊이 길고 긴 터널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홀로 묵묵히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생계를 핑계 삼아 잘 다져가던 땅굴을 벗어나 계곡에도 가보고, 햇볕도 쬐고, 비도 쫄딱 맞아보기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작가라는 경로에서 이탈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과연 그림을 그리는 게 내 일이 맞나,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고민해보기도 한다.
모출판사의 편집자 선생님은 계약했던 삽화 작업이 다른 작가님들보다 무척, 아주 무척 더디게 진행되는 것을 줄곧 지켜보시다가 "작가님은 다방면으로 관심이 참 많으시네요."라고 하셨다. 출판사로 불러 점심도 사주시고, 커피도 사주시며 나름의 온건한(?) 재촉을 하셨으니 참고 참다가 하신 말씀이셨으리란 걸 알아서 마음이 무겁고, 죄송했다. 편집자님 입장에서는 나의 꼴이 봄볕 아래에서 여기저기 신나게 놀러 다니는 마음 태평한 토끼 같아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돌무더기 같은 마음의 짐이 한가득인 것을, 티 낼 수는 없어 그저 사죄하며 웃었다.
같은 꿈을 가진 또래를 만나 처음으로 느낀 생활의 간극은 살면서도 도무지 좁혀지지 않더라.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인 금잔디의 기분이 대략 이랬을까. 어른이 되어보니 금잔디를 서럽게 만든 건 밀가루와 날계란, 폭력적인 말보다 '그러지 말고 교복 여러 벌 더 사놔.'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가더라도, 그림 그리며 사는 삶은 이어가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터널을 나와 바쁘게 움직여 본다. 그렇게 얻은 외주 작업비가 입금되면 생계비와 작업실 월세를 제외하고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푼 돈을 그러모아 화방에 오간다. 올해 출간한 영유아 그림책은 아이가 볼 만한 나이에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며, 마음속에 돌무더기를 이고 지며 고군분투하는 사이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유치원에 입학했다. 아쉽지만 이러한 시기의 어긋남이 꽤 익숙한 편이라 마음에 깊이 담아두진 않는다. 그저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 작업 속도는 언제나처럼 더디지만 그래도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새해에 뵈었던 모작가님과 우연히 만나 근황을 묻던 사이, "그 작업을 아직도 하고 계세요?"라는 물음에 "네에, 그러게요."하고 해사하게 웃어본다. 중년이 되었을 츠쿠시(만화 '꽃보다 남자'원작의 주인공 이름)는 자신 만의 역에 도착했으리라, 마음의 무게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을 그녀의 삶이 지금은 꽤 만족스럽고 근사하리라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