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째 유치원에 등원하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파주로 향했다. 투약의뢰서를 작성해 담임 선생님께 맡기기엔 아이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의 맹구처럼 콧물이 턱까지 쏟아지는 바람에 아이의 감기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내일은 보낼 수 있으려나, 모레이려나 상황만 살피고 있었다.
아이가 딱한 것과는 별개로 가정보육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내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부화가 난다. 개인 작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잡혀있던 회의에 참석이 어려워 양해를 구해야 하고, 꼬마작가반 그림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 보호자분들께도 연락해 수업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작업실 한편에 작은 숍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문을 닫아두면 손님의 왕래가 한동안 뚝 끊기는 것도 고민이 된다. 아이가 더 어렸을 무렵 돌치레부터 시작해 분기별로 잔병을 치를 때에는 2-3주 동안 문을 닫아두었던 것도 부지기수여서, 손님들이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항상 문이 닫혀있어서 궁금했어요.’하는 말을 종종 전하곤 했다. 이 시기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육아가 그런 걸 어쩌겠나 싶다가도 가끔은 마음이 답답해서 등원을 포기하는 상황이 오면 아예 동네를 벗어나 바람이라도 쐬고 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
환절기마다 어린이에게 찾아온 감기는 대부분 비염의 증상으로, 고열을 동반하지 않는 이상 체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어서 적당히 노는 시간도 확보해주어야 한다(놀지 못하면 짜증을 내는데, 체력이 떨어져도 또 짜증을 낸다. 그래서 이 적당히가 좀 어렵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이 모이는 실내 놀이터보다는 야외로 가보자고 생각해서 찾게 된 곳이 파주 헤이리였다. 헤이리는 고목이 어우러진 경치 감상을 좋아하는 나와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아이를 데려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또, 헤이리로 향할 때 강변북로에서 자유로로 진입하며 풍경의 주도권이 차츰 도시에서 자연으로 바뀌는데 나는 이렇게 전환되는 분위기를 좋아했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과 갈대가 풍경에 등장해 가을로 진입하는 느낌이 든다. 경치를 감상하며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하던 마음이 나아져서 오늘처럼 아이랑 어딘가 다녀와야겠다 싶을 땐 주로 헤이리를 찾았다. 게다가 자차로 이동거리가 한 시간 남짓이라 잠깐이나마 아이를 낮잠을 재우기도 좋았다.
차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 활기를 찾은 아이와 헤이리 곳곳을 누볐다. 아이가 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다던 터키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아이스크림을 잡을 수 있다며 의기양양했으나 역시나 사장님께 잔뜩 골려졌다.), 편집숍도 구경하고, 들풀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길고양이와 인사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한나절이나 지나있었다. 저녁은 집에 가서 먹자고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이는 제법 피곤했는지 차가 움직이자마자 잠들었다.
운전대를 잡고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니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숨을 깊게 들이켰다. 북한강변의 철조망과 갈대밭 위로 이름 모를 철새가 날아간다. 아마도 가족이겠지. 손님이 오고 가는 거야, 계절을 타기도 하고,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에 힘쓰지 말자 다짐해 본다. 등원을 쉬게 되는 시기가 오면 그간 아이랑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채우는 시간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간이 오늘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서울 방향 이정표를 따라 액셀을 밟았다. 하늘 위로 어스름하게 핑크빛 노을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