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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형길 Aug 04. 2024

항상 나는 사랑보다 앞서가고, 사랑보다 뒤처지죠.

보려다만 영화가 있어요. 몇 번을 보려다가 꺼버린 영화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고요, 인생에서 꼭 봐야 되는 영화도 아니죠. 내가 봤으면 해서 그녀가 알려준 영화입니다. 곁에 있을 때는 꼭 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이상하게 당신이 떠나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당신은 이 영화를 보고 나로부터 어떤 말을 듣기를 원했을까요. 단순히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궁금했던 걸까요. 언젠가 영화의 두 남녀가 우리를 닮아있다고 했었는데 그 장면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주인공들의 말꼬리를 빌려 사랑한다는 말을 대신하고 싶었던 걸지도요.


누구에게나 내 손으로 끝내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죠. 저에게는 당신의 영화가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추천한 영화는 소중해서, 소중한 만큼 가볍게 볼 수 없었죠. 영화에는 그 사람이 이전에 했던 사랑이 묻어 나오기도 했거든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만, 그녀를 사랑하려면 이전 사랑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했거든요. 그게 어렵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얼추 전에 그 사랑이 끝나는 시점과 사랑이 다시 반등하는 시점에서 일어났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장면에서 당신이 그 장면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나와 같은 사랑이었으면 하는 마음. 설령 사랑의 형태가 다르더라도 같은 지점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받고자 하는 어떤 복합적인 마음인 거죠.


내가 생각하는, 갖춰져 있는, 올바른 공간에서 완벽하게 당신의 영화를 맞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죠. 당신이 말하던 장면들을 제대로 느끼고 싶고,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항상 나의 상태는 당신보다는 나로 가득했네요. 간혹가다가 사랑이 깊어지면 무서워지고, 내 안에 당신을 없애버리기도 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당신을 내 안에 머물게 하려면, 처음에 하지 못했던 나의 있는 모습을 최대한 빨리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나는 사랑보다 앞서가고, 사랑보다 뒤처지죠.


영화를 틀어놓고 꼭 딴짓을 해서라도 당신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러지 않으면 꼭 달아나갈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기도 하고, 밥 먹을 먹기도 하고 때론 자버린 적도 있었어요. 쉽사리 당신을 보낸다는 게 말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틀어져 있는 시간만큼은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영화가 다 끝나버리면 이 순간도 끝나버리는 거였죠. 영화 속내용을 알아버린, 그때 당신이 말하려던 당신의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더 당신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네요. 그게 두려웠어요. 그것이 당신인 것처럼, 그깟 이별에 지는 사랑이란 없는 건데. 그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시간만큼 멀리멀리  보내면, 파도에 쓸려 돌아오는 것이 사랑이죠. 아직 당신의 말들과 시간은 투명한 병에 담겨있어요. 내게 없는 좋은 사랑하세요. 나도 저 여름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사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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