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7. 25.
얼떨결에 올레7코스 2.
이미 많이 걸었지만 황우지 해안이 지척이었다. 바다가 부르고 있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걷다 보니 이 길이 ‘올레 7코스’임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간 길이라고 하니 안심이 되어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었다. 삶의 길도 그런 이치인 것일까.
길이 바다 바로 옆이긴 한데 절벽 위라서 바다에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핸드폰 위치표시로는 황우지 해안을 지나쳤단다. 물음표 가득 걷다 보니 작은 휴게소와 스쿠버다이빙 장비들을 빌려주는 노점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물에 쫄딱 젖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도대체 어떻게 젖은 것인지 신기해하고 있는데 ‘황우지 해안 선녀탕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길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절벽을 내려갔다.
감탄사. 현무암 바위들이 바닷물을 감싸 수심이 깊은 못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로 막힌 것이 아니어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넘실거렸다. 왜 선녀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몸이 아프긴 한 모양인지 수영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나게 노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길에 나섰다.
선녀탕 계단을 올라오고 보니 왼쪽으로는 황우지 동굴, 왼쪽으로는 외돌개였다. 둘 다 가보고 싶은데 어쩌지? 욕심으로 낑낑 거리다가 황우지 동굴은 내려다보여 그 자리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검은 절벽 아래 바위와 모래톱이 뒤섞인 깊은 만. 황우지 해안인듯했다. 해안 바로 앞 절벽에 인공동굴 4~5개 가 뚫려있었다. 표지판에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제주를 요새화하면서 뚫은 동굴이라고 적혀있었다. 물놀이하기 좋아 보이는 해변이지만 외국 군대에게는 침공하기 좋은 통로였던 것이다. 함선을 정박하고 군화 발로 그 해변에 내려 동굴을 뚫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섬뜩하고 으스스했다. 바다 냄새에 쇠와 피 냄새가 섞여들어오는 것 같았다.
외돌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 갑판으로 산책로를 해놓아 걷기 편했다. 울창한 숲과 바다가 어우러져 역시나 장관이었다. 외돌개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바위 절벽이 나타났다. 그 어느 안전바도 없이 깎아지는듯한 절벽 아래로 파도가 세차게 치는 곶(串)이었다. TV에서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코끼리 바위를 본 적 있는데 딱 그런 모습이었다. 현무암 절벽이어서 온통 검은 것이 아프리카 같기도 했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파트 6~7층 높이는 되어 보였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시체도 찾아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돌개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올레길에 갇히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날 때쯤, 외돌개 휴게소가 나타났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너무 지쳐서 외돌개에 가는 것은 무리일 듯했다. 한라봉 주스를 사 먹으며 아주머니께 신서귀로 가는 버스를 물어봤다. 버스 정류장 위치와 버스 시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배꼽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헤어졌다.
정류장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 깊은 제주 오지에서 멀거니 버스를 기다렸다. 핸드폰도 있고 여차하면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 하면 되니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니기 힘들어도 괜찮다. 더 이상의 개발 없이 접근이 어려운 제주 모습 그대로 있어주었으면.
2017. 7. 2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