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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31. 2017

얼떨결에 올레 7코스1.

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7. 25.

얼떨결에 올레7코스 1.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싶어 서귀포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뭍에서 보지 못했던 귤밭과 남방의 우거진 나무들이 지나갔다. 내릴 곳을 지나쳐 허둥지둥 내려보니 올래 매일시장 앞이었다. 병원도 점심시간일 테니 시장에서 밥을 먹어야겠다 싶었다. 대게고로케, 흑돼지꼬치 등 맛있는 것들이 유혹했지만 어차피 코가 막혀 맛을 모를 테니 다음에 먹어보기로 했다. 뒷골목에서 오래된 밥집을 찾아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뭉텅뭉텅 썰어넣어 입맛을 모름에도 맛있었다. 밥을 먹고나니 병원은 잊어버렸다. 식당 아주머니께 천지연 폭포와 정방 폭포 중에 어디가 더 좋은지 여쭤봤다. 이 더운 날 굳이 거기를 가겠다는 여행객이 어이없었는지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천지연이 더 좋아요. 버스타고 가도 되는데 택시타도 기본요금 나오니까 택시타세요.”


 감사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가진 것은 오직 시간인데 버스를 타면 어떠리. 제주 버스답게 30분 뒤 도착이었다. 정류장에서 10분간은 얌전히 잘 기다리다가 너무 지루해 걷기로 했다. 정방폭포가 15분 거리에 있었다. 뜨거웠지만 바다를 보며 걸으니 신이 났다.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정방폭포. 검은 절벽에서 쏟아지는 흰 물줄기가 깊은 못을 이루며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폭포를 바라보면 깊은 정글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믿기지 않아 몇번이나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봤다. 폭포수의 시원함에 흠뻑 빠져 풍경을 구경하다가 천지연 폭포도 얼른 보고싶어 일어섰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소암기념관에서 이중섭 미술관까지 연결되어있는 ‘작가의 산책 길’이었다. 이게 웬 떡이지. 예쁜 벽화와 독특한 상점, 카페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이중섭 미술관 근처에 ‘이중섭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곳에 서귀포에서 살았던 집과 방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게를 잡아다 삶아먹으며 겨우겨우 삶을 연명한 이중섭. 사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과 거리가 생길 줄 상상이나 했을까. 1.5평의 그의 방을 구경하며 서귀포에 얻은 내 방을 떠올렸다. 지금은 그때만큼 가난한 시기가 아니지만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겨우 살고 있다는 것은 비슷하네. 밭일이나 뱃일 같은 돈 되는 일은 안 하고 그림이나 그리는 모습이 남들의 눈에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글이나 쓰고 있는 처지에 작은 위안을 받았다.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 그림편지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홀로 아프지만 약을 먹어 다 나았다는 편지. 가족들은 뭍에 두고 혼자 제주도에서 아픈 나와 대비되면서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떨어진 사람은 애정어린 투정을 부릴 수 있지만 스스로 뛰쳐나온 나는 그럴 수 없다. 홀로 버티고 이겨낼 수밖에 없다. 가난 속에서 고생만 실컷 하다가 죽은 이중섭.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행복했겠다 싶었다.


  미술관을 나와 조금 걸으니 처음에 방문했던 올레 매일 시장이었다. 이렇게 이어진 동네구나,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며 마을이 쏙 들어왔다. 천지연 폭포로 가는 버스는 20분 남았는데 천지연 옆에 있는 남성마을입구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얼른 버스에 올랐다. 겨우 두 정거장 지나 내렸지만 걸었으면 많이 지쳤을 테니 고마웠다.   

천지연 방향으로 걷는데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이 나타났다. 해가 살짝 저물어 시원한 바람이 부는 오후 5시,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공원. 왜 이 곳이 시(詩) 공원인지 알 것 같았다. 공원의 끝까지 걸어가자 ‘폭포 전망대’가 나왔다. 어쩐지 지대가 높더라니. 우거진 숲 가운데로 천지연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폭포가 내려다 보이는 평상에서 요가와 명상을 했다.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히 힘찬 폭포. 매일 이렇게 지내면 건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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