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백수
비행기에 오르기 전 병원에 들렀다. 목과 코가 심하게 부었다고 일주일은 꼬박 나와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저 다른 데 가는데요?"
"그럼 거기서 병원 가세요."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타지에서 홀로 아프면 서럽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겠네, 흘리듯 넘겼다. 가족들과 함께 있던 모든 세월에 툭하면 아팠는데, 그보다 더할까 싶었다. 제주에 갈 준비를 하면서 무리했더니 결국 병이 났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했던 일주일이었다.
집을 구함으로써 제주에서의 생활이 윤곽 잡힌 날 밤, 부모님께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제주도에 다녀올게요. 비행기 시간은 오후 3시 15분이야, 어떻게 할지는 가서 생각해 보려고." 월세로 집을 얻었다는 이야기, 적어도 한 달은 제주도에서 머물 것이라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지인들에게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지만 부모님께는 결국 하지 못했다.
부모님과 상의하여 함께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독단으로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한편으로 서른 살이나 먹고 왜 이런 결정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부아가 치밀었다. 그럼에도 걱정이 사라지질 않았다. 나는 왜 이러는 것일까. 부모님을 설득했으면 내 뜻을 이해해 줬을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노발대발할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뜻을 꺾고 본인들 의견을 따르도록 했을 것이다. 부모님께 무참히 패배했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내 뜻을 꺾고 부모님의 뜻에 따랐던 결정적인 순간들. 이대로 가다가는 부모님의 의견이 없으면 혼자 살아가지 못하는 멍청이가 될 것 같다.
서른이다. 한숨 돌릴 만큼 살았는데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다. 이런 한심하고 멍청한 처지 그만두고 싶다. 부모님과 의논하면 이번에도 꺾일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폭풍이 불더라도 그것은 그때 가서 맞으리라.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것이 나에게 왜 이렇게 중요한 걸까.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들의 모든 일에 크게 반응해왔다. 조금만 다쳐도 호들갑을 떨며 걱정했고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면 못하게 했다. 세상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는 어머니 때문에 도대체 마음 놓고 무엇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눈치를 보는 것이 몸에 뱄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도 약한 것일까? 또 나는 왜 그런 어머니에 맞춰 자기검열을 하며 살아왔을까. 자라면서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지 않도록 얌전한 짓만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본성은 뽑히지 않았다. 깊은 곳에 짓눌려있었다. 화해할 수 없는 두 힘이 전쟁을 벌였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성인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나무 그늘 아래 씨앗을 심으면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죽어버린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나는 뿌리박혀 자리를 옮기지 못하는 식물이 아니다. 몸과 정신에 온갖 짐승들을 데리고 있는 인간이다. 미약하게나마 인간이 되고자 애쓰는. 그런 인간이다. 그늘을 벗어날 힘이 충분히 있는데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왔다.
제주에서 첫날밤, 온몸이 불덩이같이 절절 끓었다. 아프지만 자유롭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정화하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타성을 버리기 위해서는 한바탕 아플 수밖에 없다. 웅크리고 누워 몸이 치르고 있는 전쟁을 조용히 지원했다. 씻은 듯이 나으면 마음도 정신도 건강해져 있으리라. 이대로 스러지진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