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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n 08. 2018

동생과 4박5일

제주일기

[제주일기]

2017. 08. 09.-13. 

11. 동생과 4박5일


  아무런 계획도 의욕도 없이 뒹굴 거리던 7월, 동생이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고 싶다고 했다. 휴가를 언제 쓰면 되냐고 재촉하는 동생의 등살에 떠밀려 얼른 제주에 내려왔다. 홀로 지내는 동안 자유롭고 즐거웠지만 가끔은 친밀한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싶기도 했다. 동생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잔뜩 약을 올렸다. 그를 기다리며 계획 없이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던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180도 다르게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대안1, 대안2 까지 마련하며. 아름다운 제주만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 잊을 수 없는 휴가를 보내게 해주고 싶은 욕심. 4박5일이 짧았다.


1. 일정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외돌개-황우지 해안과 비자림은 무조건 갈 생각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하루에 3~4곳을 방문하는 일정. 너무 서두른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동생이 만족스러워 했다. 덩달아 만족했다. 

둘째 날 - 정방폭포, 이중섭 미술관,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외돌개-황우지 해안, 중문해수욕장

셋째 날 - 스쿠버다이빙

넷째 날 - 사려니 숲, 비자림, 월정리 해변, 세화 해변, 삼양 검은모래 해변


  스노쿨링,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 중 하나는 꼭 하고 싶다는 동생의 제안에 스쿠버다이빙을 하기로 했다. 동생과 나, 둘 다 경험이 없었다. 항상 해안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문섬.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다이빙 포인트라니 운이 좋았다.바다 속에서는 코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다. 아가미가 생긴 느낌. 폐가 움직여 숨을 쉰다는 것을 매 순간 느꼈다. 어떤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면 다른 기관이 대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심이 가늠되지 않는 새파란 바다는 해수욕으로 느끼는 것과 전혀 달랐다. 온갖 열대어들, 전갱이 떼, 산호초. 매 순간이 놀랍고 아름다웠다. 왜 사람들이 스쿠버다이빙에 빠지는지 이제야 알았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물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동생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이 깊은 바다에서 아무 장비 없이 맨 몸이라 생각하니 마냥 유쾌하지 않고 무서웠단다. 동생이 나보다 생각이 깊구나.


2. 먹거리

  음식에는 욕심이 없어 그동안 대충 때웠는데 동생과 있는 동안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제주 공항에서 만나 저녁부터 먹으러 갔다. 흑돼지 구이집. 돼지 껍질까지 살아있는 오겹살과 전복 구이에 멜장을 찍어먹었다. 감탄 또 감탄. 이튿날 저녁에는 회를 먹으러 갔다. 법환포구에서 미리 봐둔 <어촌계횟집>을 갔다. 렌터카는 집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려 했는데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겨우 도착해 횟집에 들어갔다.

  “두 분이세요?”


  식당 직원의 난감하다는 표정을 마주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메뉴판을 열었는데.. 다금바리, 돌돔, 참돔, 방어. 최저 10만 원 이상 하는 생선만 간단히 적혀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생선과 화려한 가격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질문했다.


  “광어, 우럭은 없나요.”

  “걔네들은 안 팔아요. 돔 집이라.”


  쓸쓸히 가게를 나왔다. 근처 일식횟집에서 먹었지만 제대로 된 제주 회를 못 먹은 아쉬움이 남았다.

  

  월정리 해변의 <어등포 해녀촌>에서 우럭튀김정식을 먹었다. 우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소스를 얹은 요리.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가서 그런가. 치켜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육지에서 쉽게 맛볼 수 없을 요리여서 좋았지만. 생선요리 좋아하시는 부모님 생각이 났다. 이외에도 보말국수, 두루치기, 해물짬뽕 등등. 잘 먹고 다녔다.



3. 동생바보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동생 없는 자리에서 나는 알아주는 동생 바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아는. 이번 여행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서 가는 곳마다 셔터를 눌러대는 통에 지친 동생이 그만하라고 짜증을 낼 정도였다. 애인과 세계여행 컨셉으로도 여러 컷 찍었다. 사진을 보고 동생 애인이 질투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감과 함께. 살짝 비뚤어진 애정이려나. 같은 핏줄이면서 우월한 동생을 나 자신과 동일시 해 애정을 퍼붓는 것 같기도 하고. 못 가진 것에 대한 소유욕인 듯도 하고. 아직 범죄의 수준은 아니니 괜찮겠지.



  쏜살같이 지나간 4박5일. 마지막 날 아침, 동생과 함께 인천에 돌아오라고 어머니가 전화로 성화를 부렸다. 다시 혼자가 된다. 그렇지만 돌아갈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직 아니다. 곧 볼 텐데 뭘. 가볍게 인사하고 공항에서 헤어졌다. 동생이 안 보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런 감정이 안 드는데, 양파를 깐 것처럼. 연신 눈물을 훔치며 왜 이러지 이상하다 했다. 정신은 몰라도 몸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2017. 08. 09.-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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