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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명 Aug 18. 2020

수용소의 새벽

지금은 새벽 네 시 이십일 분입니다. 몇 시간 전에 자려고 누웠는데 못 자고 있습니다. 항상 그래 왔듯이, 현재에 갇힌 채로... 하지만 감금을 자각하는 것은 괴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릴 적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벌써 오 년 전이야?'가

'십 년 전이네.'로 바뀌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십오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말했었습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시간이 많이 지나있을 거야. 다음에 정신 차릴 때쯤이면 난 노쇠한 몸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어쩌지 못하고 몸서리치겠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운 공간에 대해 생각할 때는 그저 '몇 년 더 묵은 공간이 되었겠다, '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 공간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삼차원의 공간에 내가 알던 '그것'이 존속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공간이 사라지는 게 먼저냐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히는 게 먼저냐의 문제입니다.


공간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자 무서워졌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무한이라는 절벽의 표면에, 제 기억을 매달 수 있는 어떤 작은 홈이라도 있었으면 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공간은 없어지지만,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면서라도 존재하지 않는가? 물론 그것이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접속한 지 오래된 SNS를 찾아갔습니다. 비밀번호도 잊어버렸습니다. 몇 번을 틀리자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이렇게 과거로 향하는 작은 문마저 닫히는 걸까?


아이디가 이메일로 되어 있는데, 수년 전 메일 서비스도 중지돼 메일함도 사라졌습니다.

친구와의 유치한 러브레터, 선생님과의 안부인사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과거의 내가, 그 시간에, 그 관계 속에 존재했음을 증명해줄 유일한 단서인데. 이제는 증거가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내 기억 속에서 잊히면 영원히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사건. 무한의 절벽에 아주 가느다랗고 투명한 실로 매달아져 있는 사건.


메일함이 돌아올 리는 없습니다. 얼떨결에 비밀번호를 찾아 로그인했습니다.


이제 제 주위에는 쓰는 사람도 거의 없는 SNS입니다. 한 때 모든 넷상의 교류가 이루어지던 플랫폼이었는데 말이에요. 이젠 이름과 프로필 사진만 남긴 채 활동이 없는 계정이 대부분입니다. 버려진 놀이동산에 박제된 오래된 유령들입니다.


친구 목록을 훑어보는데 몇백 명이 있네요. 대부분은 마지막 활동이 수년 전입니다. 한때는 어떤 관계든 맺었던 사람들인데, 이젠 정말 놀라우리만치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합니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죽었든 살았든,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남은 것을 생각하면, 빗나간 다트들이 한 무더기입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요? 15년 뒤에 말입니다. 내가 당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든, 얼마나 많이 생각했든... 결국 의미를 잃고 흩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연속되는 것이 이 차원의 모습이라면, 나는 영원히 작별인사를 하는 셈입니다.  


05:3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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