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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A Aug 02. 2019

행복의 모멘텀

osaka_kyoto ver.

    사실상 여행 준비기간과 여행기간을 포함해 꼬박 일주일 동안 너와 하루 종일 붙어있었다. 크고 작게 투닥거렸다. 속상했던 때도 있었고 방향성조차 못 잡고 화를 내기도 했다. 돌아보면 웃길 따름이다.


    해는 머리 꼭대기에 걸려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을 뜨지 못할 빛이 쏟아졌다. 하늘에서 퍼붓는 열과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열로 ‘이러다간 내가 인간 찜이 되겠구나’ 하는 날씨의 연속. 어쨌거나 우리는 뽈뽈거리면서 사방팔방을 걸어 다녔다. 사실 우리가 어디에 앉아있던 시간은 숙소에 들어갔을 때와 밥 먹을 때 밖에 없던 것 같다. 둘 다 강박적인 성격이 있나, 쨌든 우리는 별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계속 움직였더니 몸은 힘들었다. 이제 그 힘들면서도 기꺼이 다시 돌아갈 시간들에 대해 되짚어보자.



   

    가만 보면 비슷하면서도 너와 나는 거의 상극에 가까운 상성을 갖는 듯한데 여행 계획을 짜고 짐을 싸는 데 있어서는 둘 다 닥쳐서 하는 타입임이 분명하다. 출국 하루 전에 루트를 정했고 출발 5시간 전에 짐을 쌌다. 미안했던 점은 하도 정신없었던 내가 계획의 전부를 너에게 위임했던 것. 너는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들을 워드 한 바닥 가득 찾아왔고 나는 그것들의 위치를 구글맵 속에 입력한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네가 가고 싶은 곳은 나도 궁금하고, 네가 먹고 싶은 건 나도 먹고 싶으니까. 첫날부터까지 마지막까지 너의 취향으로 점철된 계획에 대해 1의 불만도 없었다. 너무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나? 히지만 사실인걸. 네가 좋다면 나도 좋다. 그 전제가 성립하기 때문에 가게 된 여행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뭣도 모르고 예약한 오전 7시 55분 비행기 덕에, 우리는 공항에 5시 반까지는 도착해야 했고 고로 공항버스를 위해 3시 50분에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나 힘든 스케줄로 인해 우리는 출국 당일날 아주 밤을 꼬박 새우게 된다. 난 꼬박은 아니겠다. 뭐에 타기만 하면 잤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다. 머리를 기대면 자는 버릇. 계속 이동하며 여행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습관인데, 덕분에  네 어깨가 좀 고생을 한 것 같더라.


    본격적 여행 얘기에 앞서 약간 TMI 적인 부분을 남발해보자면 이번 여행의 테마는 ‘환멸과 길 잃음, 그리고 물림’이었다. 일본어라고는 간단한 감사 인사나 사과밖에 못하는 일본어_무능력자인 내 덕에 나의 여행 동반자는 본의 아니게 모든 실행적인 부분들을 담당했다. 나는 행정적인 부분을 담당했다고 하자.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나 명확한 역할분담이 된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아 그리고, 필자는 폰 사용량을 거의 인생 최대치를 오사카에서 찍었는데, 구글맵을 하루 종일 켜놓고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돌아다녔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치력을 극복하지 못한 나는 너를 몇 번이고 반대방향으로 안내했고, 그때마다 우리의 여행 동반자는 날카로운 째려봄과 함께 기꺼이 현지인들에게 방향을 물어보는 기지를 발휘했다. (처음엔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같이 고민하다가,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알아서 물어보더라)


다녀와서 티켓, 영수증 그리고 남은 거스름돈들을 정리하다 아련해져서 찍어보았다.




    출국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마 구름이 예쁘다며 창밖을 가리키던 너라던가, 멀쩡하다가 다시 기절하는 내가 신기하다며 이제 좀 일어나라며 뭐라 하던 네 잔소리라던가, 기내식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정도? 그리고 입국신고서였나, 늘 누군가에게 위임하던 신고서를 처음으로 내가 쓰다가 몽땅 한국어로 써버리는 바람에 새로 받아서 다시 쓴 기억은 있다. G20 기간이라 검문이 힘들질 것이란 이야기를 귀에 못 박히게 들어서 왠지 모르게 긴장하고 썼던 것 같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타지에서 한참을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내 캐리어에 화려한 짓들을 해놓을걸 그랬다며 속으로 탄식하던 순간이 생각난다.


    거리를 걸을 때, 고개를 들어 거리를 바라볼 때 한국어가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고, 라피트권을 교환해 열차를 기다리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 곳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속상했다. 말도 안 되는 투정이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 같은 공항에 내려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그 흔하디 흔한 확률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화가 났다. 그냥, 뭐랄까 허무했다고 해야 맞으려나.


    열차는 무심하게도 정확히 제시간에 들어왔고 그렇게 탑승한 라피트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고풍스러웠다. '이걸 굳이 타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 생각은 현실로 구현된다. 그래도 동그란 창문으로 비치는 오사카의 풍경은 참 예뼜다. 나는 물론 10분 정도의 감탄과 풍경 감상 이후로의 기억이 없다. 여행 동반자의 증언에 따르면 모르는 이와 머리를 맞대고 잤다고 한다.


라피트 창문 사이로 비치던 바다. 뷰를 위해 일부러 바다를 끼고 공항을 지었나 싶었다.

    



    작렬하는 12시의 태양 아래 우리는 캐리어와 함께 뱉어졌는데, 호텔은 야속하게도 3시부터 체크인이었다. 짐을 맡겨놓고 고민했다. 이 피곤하고 제정신이 아닌 몸뚱이를 이끌고 과연 어딜 가야 할까. 난바역에 위치한 숙소는 미도스지 선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동에는 최적화된 곳이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오사카에서의 첫 끼니는 라멘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이름도 거창한 '인류 모두 면류'에 가서 인류를 대표하는 라멘을 먹어보자고. 사실 피곤한 너를 내가 지하철에 밀어 넣었다는 편이 현실에 가까울 것 같다. 그렇게 덜그럭 덜그럭 지하철을 타고 니시나카지마 미나미가타 역까지 갔다.(역 이름을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이름을 뱉다가 여행 동반자에게 혼났다.)


    역이 참 일본스럽다고 생각했다. 지하가 아닌 야외 역에 내려서 기뻤다. 역 밖으로 나갔더니 보이고 들리는 낯선 말들, 낯선 색감들. 그제야 행복 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천막 하나 없는 땡볕 아래에서의 30분 웨이팅도 헤실거리면서 기다렸다. 30분 동안 정말 양산을 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는데, 그때의 재밌던 발화를 하나 소환해볼까 한다.


    가게를 기점으로 웨이팅은 맞은편의 돌담 벼락을 따라 놓인 의자에 앉아 이루어졌다. 길바닥에는 자그마한 나무 의자가 6개 즈음 이질적으로 놓아져 있었고,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공석이 생길 때마다 한 칸씩 당겨 앉아야 했다. 그렇게 6개의 의자를 모두 당겨 앉은 이후에는 가게 문 바로 옆, 천막 아래 놓인 자그마한 벤치에 앉아 최후의 콜을 기다린다. 문이 열리며 환히 웃는 직원이 나오는 순간, 그 벤치 위의 대기자는 가게 안으로 사라져 라멘을 즐기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처음의 우리는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그냥 서있어야 했는데 이 스테이지는 지하세계였다. 지하세계에서 서서 방황하며, 우리는 의자들이 퐁당퐁당 놓인 인간계로 가고 싶어서 한참을 안달 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는 가게 옆 벤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야, 나 천상계로 가고 싶어. 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천상계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갈 수는 있는 거야? 그전에 녹아 없어질 거 같은데."

"나 이렇게까지 남의 행복을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천상계에 앉아 계신 저분이 빨리 가게로 들어가셨으면 좋겠다."


같은 발화를 족히 5번은 했던 것 같다. 시간이 가기는 하는지가 의심될 정도로 웨이팅계의 시계는 더디게 갔다. 다행히도 기다림의 끝은 존재하였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는 우리의 고통에 상응하는 맛이어야 한다며 꽤나 깐깐한 마음으로 주문했던 것 같다. 결과가 어땠냐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아버려서, 주방에 '메챠쿠챠 오이시!'와 엄지 척을 날리고 나왔다.


'human beings everybody noodles' 이 얼마나 귀엽고 깜찍한 이름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빼면 시체인 나는 그 옆에 있는 '카페 벨로체'라는 곳에 들어가서 습관처럼 한 잔을 테이크 아웃 하였는데, 생각보다 진하고 로스팅이 꼭 내 취향이어서 행복했다. 아마 여행기간 중에 마셨던 것 중에 그 한 잔이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바에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나서는 숙소가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쾌적하며, 충격적일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음에 감탄했다.




    본격적인 활동은 오후 6시 즈음부터 시작했다. 도톤보리 글리코상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다. 위고(WE GO)를 먼저 갔던 걸로 기억한다. 쏟아지는 쨍한 컬러감에 정신 못 차리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코스메틱, 완구, 액세서리, 의류 그냥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거의 모든 게 있었다. 틴트 선글라스를 쓰고 교토를 누빌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나는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던 선글라스 앞에서 넋을 잃었다지. 형형색색의 선글라스를 써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UV 차단 기능이 효력이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장난감스러운 선글라스를 사야 하느냐에 대한 갈등으로 20분은 허비했던 것 같다.(결국 그 선글라스는 사버렸고, 교토 가는 당일날 폭우가 내려 착용은커녕 꺼내지도 않았다.) 위고의 맨 위층은 구제 샵이었고 밴드 덕후였던 우리는 그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 동반자께서 물건을 건지셨다. 구제라고는 믿기지 않는 빳빳함을 갖춘 그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는, 프리즘을 관통하는 무지개가 등판에도 새겨져 있는 것이 포인트였다. 뿐만 아니라 반지광이었던 둘은 (내가 기억하기론 각자 손에 적어도 6개씩은 차고 있던 것 같다) 반지 패키지 구성에 눈이 돌아가 샀고, 군번줄을 사랑하는 너는 결국 그것까지 구입을 한다.(위고 쇼핑에서 드러난 구제 밴드 티셔츠와 군번줄 핀트는 본 여행 내내 등장할 테니 기대하시라.)


    다음은 버시카(Bershka)였다. 사실 출국 며칠 전에도 여의도 버시카를 한 번 하울을 했더랬는데, 그 반가움이 일본 버시카에 대한 정복욕에 불을 질렀을지도. 들어가자마자 디피 되어있던 찢어진 와이드 진을 보고 냉큼 저건 사겠다고 맘먹는다. 입지도 않고 결제하려다가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피팅룸으로 향했는데, 피팅룸을 나서면서는 애당초 입을 필요도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 피팅룸 옆에 있던  'There is happiness in my shopping bag.'라고 쓰인 화이트 에코백이 마음에 들어 메탈 손잡이를 신나게 달랑거리며 계산대로 향했다.


    이후에도 러쉬, 리바이스, 그리고 나는 이름을 잊었지만 네가 데리고 갔던 수많은 브랜드들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저 세상 체력과 열정으로 참 많은 것들을 구경하다가 우리는 저녁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사카에 와서 하루 3끼를 실천하지 못했다니, 수치스러웠다. 타코야끼 맛집을 찾아 나섰다. 찾는다기보다는, 직진 본능을 실현하다 우연히 맛집과  맞닥뜨렸다. 나는 애당초에 10피스짜리를 시켜 5개씩 먹은 후 편의점 하울을 해보자고 주장했다. 완고한 너는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먹는 타코야끼를 여기까지 와서 아껴먹어야겠냐 말했고, 너의 논리에 굴복한 채 타코야끼 20개를 포장했다. 그 20개를 위해 올려져 있던 4개의 불판 중 2개가 우리 차지가 되었는데 독점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편의점 하울은 안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로손(Lawson)이 어디 있는지 파악을 못해서 숙소 돌아가는 길에 있는 패밀리 마트(Family Mart)로 냅다 들어갔다. 당연하다는 듯이 바구니를 들고 보이는 대로 집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커스터드푸딩이 5개가 되어 있던데, 알게 뭐람. 첫날인데 먹고 죽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 없는 하울의 결과는.


and many more. jpg


   먹다가 생명이 위태롭다고 느꼈다. 캡슐 호텔은 기본적으로 큰 소리를 내면 안 되기 때문에 커뮤니티룸에서 조용히 빠르게 먹자 모드였는데, 덕분에 '배가 터져 죽다'라는 말을 체감하게 되었다. 타코야끼를 혼자 10개 먹는 건 무리였고 나중엔 너의 타코야끼를 내가 먹네, 내걸 네가 먹네를 가지고 벌칙 내기까지 오고 갔다. 그랬다. 타코야끼에 '물렸다.' 푸딩은 또 어찌나 많던지 둘이 한 개씩 먹고 나서도 3개가 남아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뭐하자고 이렇게 많이 샀을까. 그게 그 날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여행 첫날이 어땠냐 하면, 행복했다. 몸이 고장 나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딱, 행복했다. 하루에 루프를 걸어놓고 몇 번이라도 반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선택할 것 같았다. 행복의 요인이 꽤 여러 개가 있었는데, 간추려보자면 첫째는 열심히 소비했기 때문에. 둘째는 내가 너의 사진을 잘 찍어서. 셋째는 그냥 타지라서. 둘째가 좀 의아할 수도 있겠다. 사진이 '잘' 나왔다는 것은 사진사의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 가시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믿는다. 평면에 입체를 잘 담아내려면, 그 입체 피사체가 어느 구도에서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매력적일 수 있을지 잘 알아야 한다. 구도, 그에 따른 채광, 배경과의 조화 등등. 여행 갔을 때의 베스트 샷들은 대개 자연스러움이 한가득 묻어나는 사진들인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기 위해서는 피사체의 순간순간들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여튼 나는 순도가 떨어지는 애정을 동력 삼아 열심히 찍어댔고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아서 나는 뿌듯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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