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光乍洩 (1997) Happy Together
본 글은 춘광사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웃기지 제목이 ‘함께 행복하다’ 인데 영화에는 ‘함께’가 없이 끝나.
사랑받고 싶지만 끝까지 사랑해달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
영화가 좋았다. 그냥 허할 때 혼자 맥주 까놓고 보기 좋은것 같다.
한국 자막 달린걸 가능하다면 구매하고 싶다. 고화질이 아니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냥 한국 자막이 달려있었으면 한다. 영어로는 와닿지 않는 문구들이 너무 많았고 뉘앙스가 해당 영어 자막과는 맞지 않는다는 직감이 오는 부분들도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탱고 부분보다. 둘이 담배 피는 장면들을 더 애정한다. 피던 담배로 불을 옮겨준다던가, 피던 담배를 물려준다던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지는 그런 맥락과 행동들. 그런 것들이 더 좋더라. 그리고 사실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해주려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외로운 이들은 그 누구의 곁에 있어도 외롭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서 온전해지는 것은 서로가 타자인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 외로움이 찾아오는 주기를 미뤄줄 뿐, 외로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리라는 것. 서로를 완전히 메꿔주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런 것들을 느꼈다.
베이스캠프 같은 사람. 그러니까 베이스캠프의 개념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한 사람과 한결같은 한 사람. 그 둘이 만나서 외로운 사랑을 하는 얘기겠지, 이건. 보영이 다쳤을 때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아휘를 보며 왜인지 모르게 120% 정도 공감했던 것 같다. 결핍과 불편을 쥐고 시작하는 관계, 그래서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싹튼 관계는 꽤 공고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쏟아지는 화수분 같은 애정은 두 사람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해주겠지. 그리고 그 결핍이 메꾸어지는 순간 관계의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냥 그 당연한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휘는 보영의 베이스캠프였겠지. 돌고 돌아도 결국엔 제자리일텐데 그 제자리에 항상 보영이 있어 주었으니까. 본인이 떠나는건 숨쉬는 것과 같은 천성인데, 떠났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점이 보영을 더 자유롭고 매몰차게 떠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사랑에 대해 안다. 그러나 그 베이스캠프가 한없이 불안하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한다는 점 역시 알 뿐이다. 아휘가 장을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장 역시 아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는 장이라는 캐릭터는 타고난 베이스캠프를 지닌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기꺼이 세상 끝까지 나아갈 추진력을 주는 것; 장에게는 그것이 있었고 아휘와 보영에겐 그것이 없었으며, 서로가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기에는 각자 너무나도 외로운 존재들이었다. 자연스럽고 어찌보면 흔한 사랑 서사.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우리 주변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그걸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 쓸쓸해지는거지 뭐.
아휘가 도살장에서 새벽까지 일하며 호스로 바닥의 피를 씻어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테이크의 가장 끝은 물길로 갈라놓았던 핏물이 결국엔 다시 합쳐지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둘의 관계성 같다고 생각했다. 인위적이든, 타의든, 자의든 끊어놓아도 결국엔 다시 합쳐지는 모습이 둘의 관계성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이 당연히 다시 시작하는 줄 알았다. 끝에 혼자일줄은 몰랐지. 미련한 사랑을 되풀이할 줄 알았다. 무한 동력 장치같은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외로운 사람은 혼자일 때 가장 덜 외롭다는 결말을 던져줄 줄은 몰랐어.
한 1년쯤 전에 춘광사설을 보고 써두었던 글이다. 새삼스럽게 베이스캠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일이 있어 다시 꺼내보았다. 대의와 정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얘기에 대해 읽었다. A는 항상 제발 안전히 돌아와달라고 끝없이 닿지 않는 바람을 보내야했고, 스스로는 왜 그 이의 중력이 되기에 충분치 못한지에 대해 자책해야했다. A의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지구 반대편의 불의와 재난에 대한 사명감, 끌림이 더 커서 그 간극 속에서 늘 미안해했고 괴로워했다. 베이스캠프가 있어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수 있었던 사랑은 그냥 그렇게 하염없이 애타고 아프고 불안하고 그랬다. 그런데 스스로의 안위보다 지도에서 짚기도 어려운 곳의 정의와 안전을 우선시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라. 그게 그 사람이고, 꼭 그 사람을 사랑하는거라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고. 둘의 줄다리기는 언제나 어려웠다. 묘하게 두 이야기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