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처럼 몰래 내 뒷담화 좀 해줘 궁금하니까
예상치 않게 모자 하나를 입양했다. 수많은 모자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이리저리 대 보고 골라 내 돈 주고 산 건 아니고, 갈 곳 없는 모자였으니 입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분실물이었다. 서비스업종에서 알바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난다. 특히 술을 마신 사람들은 싸구려 우산부터 고급 가방까지 들고 들어온 기억을 모두 잃은 채 자리에 두고 가는 것이 예삿일이다. 영업이 끝나기 전이나 술이 깬 다음날 기억을 더듬어 전화라도 해서 찾아가면 양반이다. 소지품을 놓고 가는 손님들은 대부분 술을 들이붓고 밤새도록 소리를 높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몸에 힘이 빠져서는 가오나시처럼 발을 질질 끌어 집으로 돌아갔으니, 어디서 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대부분의 영업장에는 분실물을 보관하는 박스가 창고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보관된 지 약 한 달이 지나면 폐기 처분한다. 가끔 비싼 브랜드의 지갑이나 포근해 보이는 목도리가 남겨져 있으면 알바들끼리 서로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그날 처분해야 할 분실물은 주로 의류가 많았다. 한 달 전 손님들은 다 옷을 벗어두고 집에 돌아갔나, 싶을 정도로 외투부터 스웨터 귀걸이 모자 등등의 물품이 헤르미온느의 확장 가방처럼 박스에서 줄지어 튀어나왔다. 모두들 중고매장에 온 것처럼 이리저리 옷을 들춰보다가 새파란 비니 모자 하나에 시선이 몰렸다. 색깔이 또렷하고 모양이 예뻤다. 거의 새 것처럼 보이는데.. 누가 대체 머리에 쓰고 있는 새 모자까지 떨구고 간 거야, 하고 피식 웃었다. 모두 함께 돌려 써 보다가 내 머리에 올리자 잘 어울린다는 평이 들려왔다. 시간이 지나면 버리기 바빠서 나는 중고 채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파란 비니를 입양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 에 가깝다. 완벽히 정리하지는 못했어도, 여행을 자주 하게 되면서 필요 없는 짐들을 다 줄였다. 28인치 캐리어 하나 끌고 어깨에 메신저백 하나 덜렁 멘 채로 영국에 왔다. 뭔갈 잘 사지도 않고, 있는 것도 자주 정리해서 버리거나 중고장터에 내놓는다. 진짜 필요한 것 한두 개만 있으면 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너무 함부로 다루지 않아 오래 사용하지만 또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입양한 이 모자와는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비슷한 시기에 들여온 삼선 슬리퍼도 마찬가지이다. 모자는 그렇다 치고 슬리퍼 하나를 무슨 5년씩이나 신나 싶긴 하다. 하지만 아직 모양도 멀쩡하고 이제는 내 발에 맞춤인 것처럼 척 들러붙어서 극강의 편안함을 준다. 버릴 때가 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한 물건들은 마음이 좀 간다.
영화 <토이스토리>처럼, 나의 물건에도 의식과 삶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들은 나와의 여정을 기뻐할까, 탐탁잖아할까? 그냥 분실물 박스에 계속 처박혀 있었다거나, 판매되지 않은 채 조용히 재고 창고로 직행했다면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쭙잖은 주인을 만나 보풀 투성이가 되고 몸이 닳고 있다고 생각하려나. 소비되고 사용되면서 가치가 빛을 발하는 물건이 볕도 안 드는 곳에서 온전히 제 몫을 못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위로해본다.
나와 생의 일부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물건의 생산과 폐기 사이 그 어느 곳에서, 나의 탄생과 죽음 사이 그 어느 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 중간에 턱 하고 끼어든 셈이다. 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주인이 술을 먹고 바닥에 내팽개쳤는지, 어떤 털실로 어떻게 짜였는지, 플라스틱 원료의 산지는 어디인지 모른다. 그들도 내가 어떤 시절을 지나 지금에 도달했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 머리를 따뜻하게 덮어 주며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미 나를 많이 파악했을 수도 있다.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연인과 함께할 때도, 즐거운 날에도 여유롭게 걷는 날에도 함께 했으니. 내 걸음걸이로 마음이 전해진다면 이미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힘겨웠던 하루 맥주를 사러 가는 발걸음, 새로운 곳을 향하는 설레는 발걸음, 일이 끝나고 호수에 몸을 던지는 여정에도 함께 했으니. 그들이 조금이나마 파악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내가 없는 텅 빈 방에서 토이스토리 장난감들처럼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몰래 엿들어보고 싶다.
문득 이들이 나와 함께 했던 비행기 여정이 떠올라서 써 본다. 한국에서 잠시 살다가 뉴질랜드 워홀을 거쳐 호주 여행도 같이 다녀오고, 영국까지 따라와 5년째 함께 하고 있다니. 이렇게 멀리 오게 될 줄 알았을까? 5년이 지나도 서로가 가진 이야기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서로의 현재를 가장 잘 보살펴준다. 찬바람에 빡빡머리가 꽝꽝 얼지 않도록, 보풀이 일거나 냄새가 나지 않도록, 즐거운 주말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지저분한 흙과 오래 뒹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