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멀리 있지 않다.

산토샤 : 만족과 고요함의 철학

by 지안

들어가는 말


우리는 ‘고요’를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고요함을 찾으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멀리 떠나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요가는 말한다.

“고요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당신의 마음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산토샤(Santoṣa),

요가의 ‘만족’이라는 가르침은

그 고요함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일깨워준다.





1. 산토샤란?


우리는 종종 ‘만족’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아주 특별한 상태, 혹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성공해야, 원하는 모든 걸 이루어야, 완벽한 상황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만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현대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더 높은 목표’로 몰아세운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증명하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 길 끝에서, 우리는 오히려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여전히 부족할까?’ ‘왜 나는 만족이라는 걸 쉽게 누릴 수 없을까?’ 요가의 산토샤는 이 질문에 아주 다르게 대답한다.


산토샤는 요가 8지 중 ‘니야마(Niyama)’의 두 번째 단계로, ‘만족’, 혹은 '감사',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이 만족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삶과 나를 받아들이는 힘을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완벽’이라는 기준에 도달했을 때만 만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직장, 좋은 인간관계, 안정적인 재정, 흔들림 없는 정신력.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간관계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몸과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삶은 매 순간 불완전함으로 가득하다. 만약 만족을 ‘완벽함’에 기대고 산다면, 우리는 영영 만족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요가는 이렇게 말한다. “만족은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껴안는 데서 온다.” 산토샤는 나의 부족함, 세상의 예측 불가능함, 그리고 삶의 수많은 변수들까지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더불어 나에게 이미 주어진 것,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작지만 소중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이다.


그 연습이 없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결핍감에 시달리며 언제나 ‘조금 더’만 외치며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산토샤는 그 ‘조금 더’라는 목마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더 나은 것을 향한 열망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열망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게 하는 법을 알려준다.


산토샤는 말한다.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 “조금 부족해도, 흔들려도,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아있다.” 이 진심 어린 수용이 우리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산토샤는 무기력함이나 현실에 안주하라는 뜻이 아니다. 욕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마음의 준비 운동이다. 욕망과 목표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지만,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산토샤는 그 초조함 속에서도 한 발 멈춰 서서 “이 자리에서의 나도 충분히 살아있다”라고 속삭이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애쓰는 당신, 관계에서 인정받으려고 애써온 당신, 더 많은 성취를 위해 달려온 당신. 그 노력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금 여기의 나’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산토샤다. 성취를 향해 가는 길에서도, 당신이 이미 충분히 노력했고, 이미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인정해 주라는 것이다.


산토샤는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다. 그 대신 삶을 더 단단히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뿌리 같은 힘이다. 산토샤는 지금 여기의 삶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돌보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연습이다.


요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요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당신의 마음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산토샤는 그 고요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2. 왜 우리는 만족하기 어려울까?


산토샤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막상 마음속에서는 ‘그게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현대 사회에서 만족이란 마치 해변의 모래알처럼 손에 쥐는 순간 곧바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먼저,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더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더 멋진 집에 살고 있고, 누군가는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SNS는 이 비교를 더 빠르고 강렬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여행 사진, 멋진 성취,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인간관계.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 이미지와 내 삶을 나란히 세운다. 그리고 결핍감을 느낀다.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왜 나만 이렇게 부족할까?’


비교는 만족의 가장 큰 적이다. 요가는 말한다. “타인의 삶은 그저 나와 별개로 흐르는 다른 물줄기일 뿐이다. 그것을 붙잡아 내 삶으로 옮겨올 수는 없다.” 만족은 타인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성취를 통해서만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내가 이만큼 이뤘으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이 정도 성과를 냈으니, 나도 행복할 자격이 있어.” 그런데 삶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인정이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곧바로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요가는 여기서도 묻는다. “너의 가치는 네가 이룬 성과에만 있지 않다. 네가 살아내는 순간순간에 이미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늘 ‘더 나은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고 있다. “조금 더 준비되면 만족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안정되면 행복해질 거야.” 하지만 요가는 그 미래가 오기 전에 이미 만족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미래의 조건이 모두 맞춰져도 마음이 만족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토샤는 우리에게 말한다.


“비교하지 마라.

성과에만 너를 걸지 마라.

미래의 너에게만 기대하지 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이 작은 수용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삶을 다시 숨 쉬게 한다.





3. 에피쿠로스의 행복론 : 단순함의 가치


‘조금 더’, ‘조금 더’라는 마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묻는다. “정말로 행복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에만 있는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놀라울 만큼 단순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단순함 속에서의 만족’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와 몸과 마음의 평온.” 우리가 복잡하게 만들어낸 욕망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면 그 안에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의 기쁨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 가족 또는 친구와의 웃음, 맑은 하늘 아래에서 느끼는 상쾌한 바람. 그런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단순한 기쁨을 누리기 어려울까? 에피쿠로스는 그 이유를 ‘근심과 두려움’에서 찾았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걸 얻어야 한다는 불안, 더 높이 올라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린다.(사회가 심어놓은 경쟁 심리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가장 큰 부자보다도 더 부유해질 수 있다.”


요가의 산토샤도 이와 같은 길을 걷는다. 산토샤는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는 연습이다. 그 작은 기쁨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마음은 비로소 고요해진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덜어내는 것.” 그 속에서 삶은 훨씬 더 가벼워진다. 자유와 티끌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핵심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통이 없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 그는 말한다. “자연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네가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욕망이 너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은 요가에서 말하는 ‘비라갸(Vairāgya)’와도 이어진다. 집착을 줄이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산토샤가 가르치는 행복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용히 속삭인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지금 네 곁에 있다.”


산토샤는 바로 그 말을 마음에 새기게 한다.

삶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고요한 기쁨이 된다.





4. 불교의 있는 그대로 수용


우리가 만족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늘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면, 이 관계가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이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되면. 그때야말로 고요와 만족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그 믿음에 대해 아주 단순한 깨우침을 준다. “삶은 항상 불완전하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삶을 받아들이라.” 이것이 불교의 ‘있는 그대로 수용’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 수용’이란 수동적으로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삶의 흐름이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한 뒤, 거기서부터 다시 나를 세우는 태도를 말한다. 지금의 나를, 지금의 상황을, 지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연습이다.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종종 문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은 사라져야 하고, 분노는 없애야 하며, 슬픔은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교는 말한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그 고통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고통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다.


요가의 산토샤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을 발견하는 연습을 해보라.” 불교의 ‘수용’과 요가의 ‘산토샤’는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진정한 나, 고요함을 발견하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 흔들림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내 마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불안이 밀려올 때, ‘이 불안이 나를 덮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림 속에서 조금씩 내 마음의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교는 또한 ‘무상(無常)’을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간다는 가르침이다. 지금의 고통도, 지금의 기쁨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이 진리를 조금만 더 가까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더 가볍게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산토샤는 바로 그 숨을, 그 순간의 나를 따뜻하게 받아 안는 연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란, 삶의 파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고요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의 나,

이 불완전한 자리,

이 순간 안에 이미

고요와 만족이 숨 쉬고 있다.

그걸 발견하는 연습,

그게 불교의 수용이고

요가의 산토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5. 지금 여기서 고요를 찾는 법


산토샤는 단순히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결국 삶의 연습이며, 오늘 하루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시작되는 실천이다. 만족은 특정한,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쁨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올 때, 그 따스함을 잠시 음미해 보자. 피치 못할 이유로 조금 늦게 지하철에 올랐을 때, 그 지연마저도 ‘잠깐의 쉼’으로 받아들여보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그 향이 나를 감싸는 순간을 조금 더 느껴보자. 이 작은 순간들이 바로 산토샤의 문이다.


요가는 말한다. “삶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그 순간마다 네가 머무는 방식이 곧 네 삶의 전체가 된다.” 이 말은 삶의 어떤 순간도 헛되지 않게 한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어도,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값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결국 요가는 그 순간에 대한 끊임없는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수련이다.


산토샤의 연습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와 기쁨을 보내는 작은 시도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나’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이미 충분한 나’를 알아주는 연습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동 반응에 잠시 틈을 내어 “지금 이 자리도 충분히 좋다”라고 내 마음에 말을 걸어주는 것. 그것이 산토샤의 첫걸음이다.


때로는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게 있나?” “조금 부족해도 감사할 만한 게 있나?” “내가 이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건 뭘까?” 그 질문들은 우리 마음에 작은 창문을 연다. 그리고 그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 같은 고요가 우리 삶을 조금씩 바꿔준다.


산토샤는 삶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삶 안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더 깊이 느끼라는 초대이다.

그 초대에 조금씩 응답하며,

오늘 하루의 숨결 속에서

내가 고요하게 웃을 수 있는 작은 연습을 해보자.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고요는,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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