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생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 당일이 될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아무런 감흥도 없었는데 막상 학교 정문을 넘어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미래로 도착해 버린 것처럼 세월이 조금 무섭게 체감 됐다.
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졸업식이 맞는 건지 싶을 정도로 한적했다. 꽃을 파는 상인 한 팀만 있을 뿐이었다. 전날 밤부터 눈이 꽤 내려 운동장은 새하얬고, 차들이 그곳 질서 있게 절반쯤 채우고 있었다. 안내에 따라 주차를 한 후, 곧바로 강당으로 향했다. 시작 15분 전이었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기가 약간 느껴졌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2학년 학생들이 강당을 먼저 채웠고, 곧이어 3학년 학생 가족들로 강당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교무 부장의 안내 멘트와 함께 3학년이 입장했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었고, 애국가 1절을 불렀다. 도대체 얼마 만에 국민의례를 하는 건지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줄줄 외고 있었다. 애국가가 끝남과 동시에 암전이 됐고, 단상에 설치된 스크린에 준비된 영상이 틀어졌다. 잔잔한 노래에 아무도 없는 학교 전경과 아무도 없는 교실 풍경 사진이 나왔는데 그 짧은 순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통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이어서 졸업생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영상들이 무더기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와 졸업생들이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가 연이어 나왔다. 사실 멘트는 뻔했다. 졸업 축하한다. 대학에 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길 바란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언제나 우리 학교의 학생이었던 것을 잊지 말고 또 보는 날이 오길 바란다. 가장 좋은 시절인 학창 시절이 행복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몇몇 선생님은 시를 읊어 주기도 했는데 정말이지 그 뻔한 말들에 넘어가 눈물을 참아내느라 힘겨웠다. 내 졸업식 때에도 이렇게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싶었다.
영상이 끝나고 20분간 축사가 있었다. 너무 지루해서 그전에 느꼈던 감동과 감정이 모조리 사라진 것 같았다. 도대체 이렇게 긴 축사는 누굴 위한 시간인 걸까 싶었다. 축사가 끝나고 상장 수여식이 있었다. 그리고 졸업장 수여식이 있었는데 대표 한 명만 받는 게 아니고 150여 명의 모든 학생이 단상 위에 올라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받았다. 특이하지만 특별한 졸업장 수여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부를 일이 거의 없을 교가를 제창하며 졸업식이 끝났다.
가족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 동생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날들은 어떨까. 후회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을까. 어떤 꿈을 가꾸며 나아갈까. 내가 졸업을 한 후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찰나처럼 느껴져서 조금 무섭기도 했고, 동생 역시 일정한 세월이 지나고 나면 나와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동생과 나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서 그동안 마냥 어린아이로만, 학생으로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렸다는 게 확 체감이 됐다. 길을 다니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면, 그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늘 동생 생각이 나서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는데, 이제는 뭉클하고 왠지 섭섭하기만 해서 울적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동생은 여전히 나에게 어린아이였는데 졸업식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게 뒤집혀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동생은 성인이 됐다. 물론 앞으로의 나날을 조건 없이 응원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버려서 느끼는 섭섭함? 아쉬움?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우면서 묘하게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추신. 이 글을 통해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짧게 해보려 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네가 이런 말을 했었던 게 기억나. “이제 다시는 학교에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 모든 게 정말 끝난 것 같아.” 맞아. 모든 게 끝이지. 가혹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순간도 결국 끝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 마음을 잘 기억하고 좋은 때이던 나쁜 때이건 분명 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좋은 때도 끝이 있다는 사실은 매 순간 후회 없이 살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좋지 않은 때도 끝이 있다는 사실은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게 희망을 주거든. 물론 나도 매 순간을 그렇게 잘 살아낸다고 확고하게 자부할 수는 없지만, 모든 건 때가 있고, 끝이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큰 도움을 준다는 걸 아니까 그럭저럭 잘 살아내 볼 수 있더라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고, 너 다운 20대를 잘 보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