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링씨티 Nov 03. 2024

목적 없는 끄적임

가을비 내리는 밤에

오랜만에 일요일 저녁 혼자 책상에 앉았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다닌다. 평소 같은 일요일 저녁이었으면 유튜브를 켜서 여기저기서 유랑하다가 잠들었겠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아무 목적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


메모장에다가 그냥 뱉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이곳에 쓰고 싶어서...

2018년 겨울 한국을 떠나 싱가폴에 살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기간 동안 겪었던 경험들과 생각들을 정리한 세 개의 글을 올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었다. 지금 다시 봐도 그 첫 번째 세 편의 글이 제일 나다운 것 같다.


일상이 답답했고, 나라를 바꾸는 행동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고, 하지만 이내 또다시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엔 퇴사를 하고 내 브랜드를 만듦으로써 직업의 형태가 바뀌니 잠시동안은 자유를 만끽했던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에 겨운 시간의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하루도 가만히 앉아 쉴 수 없었던 불안하고 힘겨웠던 나날들을 보냈다. 작년 말부터 3개월 동안은 '이렇게 지내다가는 사람이 미칠 수 있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아팠다.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일을 포함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2024년 1년을 지내기도 해 본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플하지만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오고 있다. 돌아보니 내게 주어진 것 중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니 하루하루가 선물의 연속이었다. 이제 2달이 남지 않은 2024년 말에 나는 정말 숨통이 트여서 사는 듯하다.


어제는 대학교 동기의 결혼식에 갔다.

오랜만에 친한 동기들이 다 같이 모여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뜨고 행복했다. 사랑하는 친구의 행복을 함께 빌어주면서 성당이 사랑의 에너지로 꽉 채워지는 걸 느꼈다. 경건했던 웨딩 뒤풀이로 다 같이 술 한잔 하러 갔다. 취기가 한참 올라오니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하나야, 너 얼굴이 편해 보여. 여유로워 보인다.

내가 그렇게 여유 없어 보였냐고 되물으니 그랬단다.ㅎㅎㅎ 하 진짜... 겁나 솔직한 내 사람들!


지난날 스스로 채찍질하며 온갖 애를 쓰고 움직이게 만들던 내 힘든 에고가 한풀 꺾여 나갔음을 확인해 주는 안부 인사 같아서 감사했다. 지난 몇 년간 진짜 나를 찾고 사랑하는 내면 작업의 결과가 이제야 체감이 되고 있다.


과거의 나는 무언가로 꽉 채우려는 도전을 해왔는데

올해의 나는 삶을 텅 비워내는 도전을 해오고 있다.


참 재밌는 게 비우고 나니 내가 정말 필요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바라고 바랬던 거였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사랑이었다.

그런데 올해 기적같이 바람대로 사랑 많고 순수한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와의 관계를 통해 내가 버려놓은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 모습마저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올해가 두 달 남았다.

무엇을 더 비워내면 바라고 바라던 것들로 채워질까?


어차피 내게 필요한 건 내게 오게 되어 있으니까 예전같이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욕심이 올라올 때마다 비워내며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다 보면 내게 필요한 것들이 알아서 또 내게 올 거란 걸 안다.  


올해 가을은 참 감사하고 평온하다. 이게 내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행복 아녔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