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Davis - Birth of the Cool
1948년 뉴욕, 몇 년 전 처음 선보였을 당시 그 특유의 빠른 템포와 복잡성 때문에 대중은 물론 일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외면받던 비밥 bebop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음악이 아니었다. 이제 비밥은 최신의 멋지고 핫한 음악이 되어 있었다.
맨해튼 55번가에 위치한 캐나다 출신의 편곡가 길 에반스 Gil Evans의 허름한 아파트에는 매일 같이 수많은 뮤지션들이 드나들었다. 서로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나누었고 줄리어드 음악원 입학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와 찰리 파커 Charlie Parker의 비밥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던 20대 초반의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도 그중 하나였다.
마일스 데이비스, 길 에반스, 게리 멀리건 Gerry Mulligan과 같은 뮤지션들은 서로의 음악에 대한 철학을 공유했고 급기야는 기존의 일반적인 구성에서 벗어난 9인조 재즈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기로 한다. 이렇게 의기투합하여 결성된 9인조 밴드는 1949년과 1950년, 모두 세 번의 레코딩 세션을 통해 앨범 Birth of the Cool의 수록곡을 녹음한다. 하지만 정작 앨범의 발매는 한참 뒤인 1957년이 되어서나 이루어지게 된다.
기존의 빠르고 복잡한 비밥 재즈가 연주자를 위한 음악에서 출발했다면 조금은 나긋나긋해지고 말랑말랑해진 쿨 재즈 cool jazz는 청자를 위한, 감상에 더욱 적합해진 음악이라 할 수 있는 탓에 처음 마일스 데이비스의 9인조 밴드 역시 백인의 음악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Birth of the Cool은 오늘날 대표적인 쿨 재즈의 명반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쿨 재즈 하면 역시나 쳇 베이커 Chet Baker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래도 음반을 꼽자면 Birth of the Cool에 한번 더 손이 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을 내건 앨범이지만 길 에반스, 게리 멀리건, 존 루이스 John Lewis와 같은 음반에 참여한 이들의 역할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9인조 밴드의 특징을 살린 편곡을 통해 앨범 특유의 색을 만들어 낸 것은 모두 이들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Birth of the Cool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에 눈을 뜨게 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마약으로 인한 얼마간의 슬럼프가 있었지만 Miles Ahead, 'Round About Midnight, Kind of Blue 등의 음반을 선보이며 새롭게 재기한다. 앨범에 참여했던 길 에반스, 게리 멀리건 역시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어쩌면 재즈 역사에서도, 그리고 뮤지션 본인들에게도 본 작업은 여러 면에서 또 다른 탄생의 시작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혹시나 재즈는 멜로디도 잘 안 들리고 중간의 솔로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더욱 이 음반을 추천한다. 수록곡 모두 3분 내외로 짧다. 멜로디도 너무 잘 들린다. 솔로도 짧고 깔끔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곡 모두 들어봐도 좋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한곡 골라본다면 Boplicity.
Miles Davis - Boplicity from Birth of the Cool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