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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담 Jul 20. 2017

리얼리티쇼의 한국식 진화

관찰 예능

요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은 무엇보다 관찰 예능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방송되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관찰 예능의 형식을 띠고 있거나 어느 정도 그 형식을 빌려오고 있다. 짜여진 연출과 제작진의 개입을 극도로 최소화하고,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미션을 하나 둘 처리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카메라 앵글을 통해 지켜보는 관찰 예능은 이제는 예전처럼 주어졌던 한 두 개의 미션마저도 사라진 채 단순히 화면 속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행동들과 모습, 그리고 미처 예상치 못한 채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과 갈등의 해결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찰 예능은 한동안 크게 유행했던 리얼리티쇼가 한국식으로 진화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찰 예능의 그 시작은 리얼리티쇼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예전의 버라이어티쇼가 주어진 콘티와 대사에 따라 움직였다면 그 후 등장한 리얼리티쇼는 정해진 미션을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짜여진 대본 없이 그대로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리얼리티쇼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매회 특정 미션과 다양한 경쟁을 통하여 승패를 결정하고 탈락자를 선정한 뒤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에는 최종 승자를 가려내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쩌면 이러한 텔레비전 속 경쟁에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지치고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매회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그것을 멋지게 해결하는 승리자와 또 그렇지 못하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실패한 탈락자의 뒷모습을 지켜보기보다는 부모와 아이의 교감을,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을,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고 한적한 시골에서의 유유자적한 삶과 어느 이름 모를 동남아 작은 섬의 해변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조그마한 식당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소한 일상들을 바라보며 때론 공감하고 때론 잠시나마 현실 탈출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물론 관찰 예능이 아무리 제작진의 관여를 최소화했다 하더라도, 한국식 정서가 가득 담긴, 조금은 의도된 감동과 훈훈함을 위해, 또 어떤 면에서는 더욱 큰 재미와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연출과 편집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여러 비밀 아닌 비밀스러운 장치들 중 하나이다. 일례로 각각의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만들고 거기에 특정 자막과 배경음악을 입히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의 의도는 이미 개입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과 매주 탈락자를 만들어내는 형식의 방송들이 존재하지만 이 마저도 그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변하였다. 탈락자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선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달라졌으며 프로그램의 편집 방향도 탈락자의 모습을 더 이상 실패자, 혹은 낙오자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 회 방송분에서는 더 배려하고 때로는 더 부각되기도 한다. 이른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와 감성으로 탈락자를 보듬어 주게 된 것이다.


현실 사회 속에서 매일 같이 겪게 되는 타인과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이미 피로함을 느끼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시청자들은 굳이 텔레비전 속 또 다른 경쟁을 지켜보기 원하지 않는다. 관찰 예능은 탈락자를 만들어내는 미션을 주거나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날 관찰 예능의 인기는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공감하며 치유와 대리만족을 느끼기 원하는 대중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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