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본격적으로 다시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먹은 나는 18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두 번째 휴학을 신청했다.
이미 군 휴학으로 2년, 일반 휴학으로 2년을 사용했기 때문에 휴학 허용 한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2년 안에 결과를 만들어 내고 복학을 하든 자퇴를 하든 결정을 해야만 했다.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을 치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시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12명이었던 튀는애들 팀원들이 하나 둘 떠나가던 상황이었다. 누구는 취업준비를 이유로, 누구는 다른 동아리 가입을 이유로, 각자의 이유들로 하나 둘 떠나갔다. 공간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지트를 만들면서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그들이었기에 공간사업을 해나가겠다는 내 선언 때문에 떠나간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 다 떠나보내고 나니 내 곁에는 한 명만 남아있었다. 14학번 고재형, 이 친구가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된다.
고재형은 처음에 모였던 12명의 튀는애들 중 한 명은 아니었다. 튀는애들이 해나가는 활동들이 너무 재밌어 보인다며 자기도 합류하고 싶다고 요청을 해와서 맨 마지막에 들어왔던 친구였다. 열정이 가득하고 행동력 있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우리 둘로 공간사업을 해나가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공간사업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느낌상 인테리어 관련된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날들이 이어졌다. 하루빨리 내가 구상한 사업 아이템을 실현시키고 싶은데 팀원을 구하는 단계부터 막힌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모씨'라는 앱에 글을 적게 되었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략 '나 내 사업으로 성공하고 싶다!!!' 라며 답답함을 애써 누르고 굳은 의지를 토해내는 듯한 글을 적었던 것 같다. 이 황당한 글에 댓글이 많이 달릴 리가 없었다. 그냥 답답함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에 저 글을 적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답글이 달렸다는 어플 알림이 왔다.
'띠링~♪ 카드에 답변이 달렸습니다.'
들어가 보니 답글이 딱 하나 달려 있었다. 본인은 지금 비록 대학원생이지만 자기도 나중에 자기만의 사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답글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라는 생각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 사업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이러이러한 컨셉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내 구상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랬더니 자기가 대학교에서 실내 인테리어를 전공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대학원은 건축전공이라고 했다. 내가 구상하는 사업에 딱 필요한 사람이잖아??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마치 하늘이 주신 기회처럼 보였다. 이 기회를 꼭 붙잡아야 했다. 지금까지 구상한 사업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하며 카카오톡으로 넘어가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고 꼬드겼다. 이것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공동창업자 김수린과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기엔 너무 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뭐라도 있어야만 했다. 그때 눈에 들어왔던 게 정부지원사업이었다. 그중에서도 마감이 딱 일주일 남은 지원사업이 하나 있었다. 보통의 창업지원사업들은 3월쯤에 많이 공고가 뜨기 때문에 6월에는 공고가 별로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이라는 창업지원사업이 추가로 창업팀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것도 뭔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최대 5000만 원까지 지원해주는 이 지원사업에 합격하는 조건을 내걸고 1차 서류 통과하면 그때부터 만나서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모집 마감일 6월 18일까지 딱 일주일 남아있었다.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열심히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팀원 구성에 팀원 인적사항을 넣어야 해서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김수린에게 인적사항을 요구하기도 했다. 웃기지만 김수린도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나에게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해서 모든 인적사항을 알려주었다.
마감일에 딱 맞추어 사업계획서를 완성해서 제출했다. 서류심사 결과는 대략 보름쯤 후에 나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드디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김수린과 고재형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완전체로 모인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 대면심사까지 모두 합격하고 최종 합격을 하고 난 뒤였다.
그 후로도 추가로 2개의 지원사업에 합격하여 총 6000만 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처음에 200만 원 가지고 옥탑 아지트를 만들었던걸 생각했을 때 6000만 원은 충분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이땐 몰랐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합격하고 사무실을 지원받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사무실에 제일 먼저 나와 제일 늦게 퇴근했다. 회의의 연속이었다. 아이디어 구체화가 필요했다.
우리 사업의 핵심 아이디어는 '취미 공유 공간'이었다. 영어로는 'co-hobby space'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바라본 사회 문제점은 사람들이 취미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취미를 즐기지 못할까'에 대해 설문조사를 해보니 다양한 이유들이 나왔다. 그중 많이 나온 답변을 몇 개 꼽아 보면 '직장-집, 학교-집만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니 지쳐서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공간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서 풀어보고자 했다. 단조로운 일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두근거리는 취미공간을 제공해주자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가 그들에게 시간이나 돈은 만들어 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취미를 즐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를 제공해주고 싶었다.
1호점의 취미는 '영상'으로 정했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유튜버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각종 취미 클래스 서비스들에서도 '한 달 배워서 유튜브 바로 시작하기' 같은 강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적도 있었고 중학생 대상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영상 제작 교육을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던 분야였다.
점점 구체화되어가는 사업 아이디어를 바라보며 우리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오픈하면 곧바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돈도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회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잘 찾아냈다고 착각에 빠져있었다.
3개월 동안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가 충분히 숙성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실행만 남아있었다. 1호점을 낼 지역으로 홍대를 선정했다. '취미생활, 영상제작, 크리에이터, 젊음' 이 모든 키워드들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 홍대라는 판단에서였다.
부동산을 돌며 여러 매물을 살펴보았고 최종적으로 홍대 메인 대로변에 위치한 곳을 선정해서 계약을 진행했다. 이때 1차 위기가 찾아왔다. 계약을 진행하고 나서 알게 된 건데 보증금은 창업지원사업으로 받은 지원금으로는 지출이 불가능한 항목이었다. 그걸 모르고 덜컥 계약부터 진행한 상황이었다. 입주일까지 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면 계약금을 날릴 판이었다. 입주일인 10월 10일까지 한 달이 남아있었다. 그 기간 안에 2700만 원을 구해야 했다.
이때에도 *꿈틀이의 인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과거 꿈틀이 커뮤니티를 운영할 때 꿈틀이의 회원이셨던 분인데 식품 유통업으로 자수성가한 대표님께서 흔쾌히 빌려주시기로 했다. 그것도 무이자로 말이다. 다시 한번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군대에서 만들었던 꿈틀이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
보증금을 구하고 무사히 입주한 후 한 숨 돌렸다 싶었는데 곧바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인테리어를 하는데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추가 비용이 발생해서 약 2400만 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마련했던 6000만 원이라는 초기 자금은 이미 다 소진된 뒤였고 자금 수혈이 없다면 인테리어 공사가 중단될 상황이었다. 순간 아찔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창업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자금 계획도 너무 안일하게 잡아놨었구나.
이번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이미 보증금을 구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다 연락을 돌렸던 터라 더 이상 주변에서 구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인테리어 해주시는 분께 이 모든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해드렸다. '저희가 이제 돈이 없습니다. 어디서 빌릴 곳도 없습니다.' '최대한 돈을 구하려고 노력을 해보겠지만 최악의 경우 중단되는 상황까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테리어를 맡아서 진행해주신 분은 김수린의 대학원 교수님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다 들으시더니 한 가지 제안을 주셨다. 그럼 일단 돈을 빌려줄 테니 계속해보자. 사업해나가면서 차차 갚아도 된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생명연장을 하게 됐다. 게임 오버될 것 같은 상황마다 자꾸 코인이 들어와서 목숨이 한 개씩 생기는 느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취미 공유공간 1호점 '영상으로 T90호'를 오픈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치 오픈이 사업의 끝인 양 공간을 오픈했다는 것에 고무되어 있었다. 공간을 만들면서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오픈 파티도 열었다.
사실 오픈 전의 고난은 이후에 운영하면서 겪게 된 어려움들에 비하면 고난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업 초보인 우리들이 그런 미래를 알 리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축하를 받고 언론보도까지 되면서 더더욱 우리를 사업 뽕에 취하게 만들었다.
(벤처스퀘어 기사 : 밀레니얼 세대 겨냥한 '취미 공유공간')
(한국투데이 기사 : 스타트업 릴레이 인터뷰,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취미 공유공간 스타트업 '티구시포'의 조경모 대표를 만나다)
다음 편 읽기 6. 과거의 인연이 내려준 생명의 동아줄
사업자등록증을 내기도 전에 예비창업팀 신분으로 여러 지원사업에 합격하고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희는 저희가 사업에 소질이 있고 사업을 잘해나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때의 사업 아이템인 취미 공유공간은 철저히 망했습니다. 저희가 만든 공간과 서비스가 시장이 원하는 서비스가 아니었던 것이죠.
'성공할 또는 성공적인 사업이 창업지원사업에 합격하고 각종 경진대회에서 수상 한다'는 명제는 맞을지라도
'창업지원사업에 합격하고 각종 경진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명제는 틀린 명제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깨달은 몇 가지를 공유해드리고 싶습니다.
1. 심사위원들은 심사위원 들일뿐 고객이 아니다.
대면심사에서 어떤 심사위원을 만나는지, 같이 대면심사를 본 다른 경쟁팀은 어떤 사업 아이템을 가져왔는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천차만별입니다. 약간의 운도 따라야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그게 시장에서도 먹힐 아이템이라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심사위원들에게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그게 시장에서 외면당할 아이템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돈을 지불하는 건 고객이며 사업의 성패는 고객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니 지원사업 합격 여부가 어떻든 창업경진대회 수상 여부가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말자고요!
2. 지원금은 투자금이 아니다.
지원금은 말 그대로 '지원'금이었습니다. 너희 사업 한번 시도해봐라 하며 지원해주는 것이지 너희 사업 잘 될 거 같으니까 투자할래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지원사업이나 경진대회에서 지원금이나 상금만 전문적으로 타 먹으면서 제대로 사업은 하지 않는 지원금 헌터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느낀 바로는 예비창업자나 초기창업자에게 각종 지원사업은 가뭄의 단비처럼 시기적절하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잘만 이용한다면 사업에 부스터를 달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시장 출시와 초기 반응을 보기 전까진 자금이 필요하니까요. 만약 이 글을 읽는 분 중 예비창업자가 계시다면 꼭 활용해보시길 추천하며 만약 지원사업에서 자꾸 떨어진다면 결과에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피드백과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붙을 확률도 높아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