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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Sep 02. 2021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좋아한 감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한 편 못 본

처음부터 

조금 놀라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단 한편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지인,

취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다 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의 팬들이었고.


종종

이 감독이 만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땐

나는 약간 딴청을 피우거나,

유튜브나 나무위키쯤에서 본 대충의 영화 줄거리를 떠올리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 같다.


상대방은 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겠지라는

짐작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했을 거란 확신이 있는데,

아무튼 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몇몇 대표작의 이야기와 대략적인 주제는 알고 있고,

그걸 가지고 이야기도 나눠본 적이 있다.



그거에 더해 최근에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본인의 작품들을 한편 한편 찍으며, 생각하고 고민했던 이야기를 적은

책 마저 먼저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 또한 과거에 읽을 법한 기회들은 충분히 있었다, 몇 번씩이나)


영화 작품과 별개로

책 내용은 너무 좋았고, 나의 지인들이 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애정을 더해 한지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그 어떤 책보다 책 아래를 많이 접게 되었고,

(좋아하는 문구나 문장이 나오면 난 책 아래 귀퉁이를 작게 접는 습관이 있다)

기회가 없어서, 혹은 같이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뾰로통하게 

제쳐 놓았을 그의 작품들을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친한 사람들과 함께 보고, 밤새 이야기하고 싶다 생각했다.



p.35

<<너는 그저 현재일 뿐이다 - 텔레비전에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 읽고 충격을 받은 책인데, 이 책에서 그들은 텔레비전을 클래식이 아닌 재즈에 비유합니다.

텔레비전은 재즈입니다. 그럼 재즈란 무엇인가 하면,

그래요, R.휴즈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재즈는 원주입니다. 당신은 그 한가운데 있는 점이고요. 재즈는 작곡된 음악이 아니라 박자와 리듬이 있는 한 느끼는 대로 나아가면 작곡하는 즉흥연주, 매우 행복하고 때로는 슬픈 연주 행위입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신자와 수신자가 따로 있는 게 이나리 모두가 송신자와 수진자입니다. 이전에 쓰인 각본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가오는 '현재'에 모두가 저마다의 존재로 참여하는 잼 세션입니다. 텔레비전에 '이전'은 없습니다. 언제나 '현재'입니다. 언제나, 언제나  현재의 텔레비전. 그러므로 텔레비전은 재즈입니다.

- 5장 '텔레비전은 재즈다'에서

악보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 즉 반복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텔레비전의 특성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p.56

기록영화(다큐멘터리)를 충족시키는 창작자의 조건은 '대항에 대한 사랑과 싶은 관심'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시간'이라는 두 가지를 전제로 "취재를 통해 찍는 쪽에서 일어난 변혁까지 포함하여 작품화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p.75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 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만약 성립한다면, 취재자와 피취재자가 대립하지 않고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방송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p.113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다."

이런 소리가 예전부터 텔레비전 현장에서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큐멘터리 방송을 제작해 보니 사실 진실 중립 공평과 같은 말은 매우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란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한 가지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요. 예전에 니폰 TV에서 <논픽션 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만든 우시야마 준이치씨는 "기록은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p.157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 가운데 "나는 후지TV는 싫어하지만 TV아사히는 봐"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재미있는 방송이라면 누구든지 볼 것입니다. 저는 그런 '뜻밖의 마주침'이 텔레비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그러므로 텔레비전 방송으로 작품을 본 사람의 사고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가려는 생각을 언제나 품고 있습니다.


p.190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어들여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 생각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없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 그 사람의 일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거나 일상을 비평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p.381

아이도 어른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아직 완전히 사회 일원이 되지 않은 아이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비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 이미지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세로축에 놓으면 죽은 자는 세로축에 존재하며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비평하는 존재, 아이는 같은 시간축에 있지만 수평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비평하는 존재라는 느낌입니다.


p.420

지금의 저는 제 생활이 무엇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는지 제대로 그리고 싶습니다. 시대나 사람의 변화를 뒤쫓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생활에서부터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 발밑의 사회와 연결된 어두운 부분을 주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외부와 마주하고, 그 좋은 점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것에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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