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체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공허함과 상실감을 동반한 불행은
사실은 다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p.24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
p.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 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p.81
"그건 그렇고...... 비프 스튜 좋아해?"
"그럼."
"사실은 비프 스튜를 만들었는데, 나 혼자 먹어 치우려면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 먹으러 오지 않을래?"
"나쁘지 않군."
"좋아, 한 시간 안에 와. 만일 늦게 오면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거야. 알았지?"
p.94
죽은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죽었기에, 그들은 영원히 젊기 때문이다.
반면에 살아남은 우리는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나이를 먹어간다. 때때로 나 자신은 한 시간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p.123
나도 이따금 거짓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던 건 작년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 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p.156 작가의 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 -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 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당연히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을 짧은 하루키의 소설인데,
연휴 마지막 서점 폐점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가서는
주섬주섬 집은 책 중에 한 권이 되었다.
낮술에 관한 책
아이스크림에 관한 책
조직문화에 관한 책
발칙한 예술가들에 관한 책
성장에 관한 책
그리고
투잡 시절 하루키의 초심이 담긴 책.
읽었는데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앞으로도 기억나지 않은 채로 몇 번을 더 집어 들 책.
바람의 노래가 무언지 도통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난 후 괜히 킁킁 대며 여름의 향기를 상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