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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Mar 13. 2022

'1Q84년'과 '고양이 마을'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던 하루키 월드

이 책은 2022년을 맞아 큰 마음을 먹고 주문한 책인데,

그 이유는 원래 세 권이었던 책을 하드커버인 한 권으로 합쳐놓은

무려 1502 페이지에 다다르는 분량의 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글씨가 빽빽이 채워진 긴 분량의 소설책을 읽은 건 처음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게나마 밝혀보는데,

결국 다 읽는데 무려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책 속의 '1Q84년'처럼 예상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고,

책 속의 아오마메처럼

놀랍게도 나도 지금 한동안 격리 중이다. 



 p.117

고마쓰는 말했다. "나는 그런 쪽의 감이 뛰어나. 매사에 재능이라고는 타고나지를 못했지만 감만은 넉넉히 갖고 있지. 외람되지만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어. 이봐, 덴고. 재능과 감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알아?"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도 반드시 배부르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뛰어난 감을 가지고 있으면 굶어죽을 걱정은 없다는 거야."


p.478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p. 565

"...1968년부터 꾸준히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인기 있는 모델이야. 그래서 신뢰성이 뛰어나지. 새 제품은 아니지만 총기 사정에 밝은 사람이 다뤘는지 손질이 아주 잘되어 있어. 총은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신제품보다 상태가 좋은 중고가 오히려 더 믿을 만해."


p.724

아오마메는 말했다. "복수만큼 코스트는 높고 이익은 생기지 않는 일은 없다, 고 누군가 말했죠."


p.1007

"아무 일도 없어요." 후카에리는 말했다. "다른 때 하고 똑같아요."

"나도 별일 없어. 날마다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그렇지" 덴고는 말했다. "시간은 날마다 하루치씩 앞으로 나아가."

그리고 나아가버린 것은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p.1447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각자 소중히 가슴에 품은 채, 끝까지 떨어져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언제까지고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은 몸의 깊은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그마한, 하지만 소중한 발열이다. 손바닥으로 소중히 감싸서 바람으로부터 지켜온 작은 불꽃이다. 현실의 난폭한 바람을 받으면 훅 하고 간단히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a.

한때 '호우호우'라는 모바일 날씨 서비스를 열심히 만든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하루키 이야기가 나오면 주위의 몇몇 사람들을 1Q84 이야기를 하곤 했다. '상실의 시대'만 줄기차게 읽은 나로서는 "하루키 소설에 그런 게 나와?"라고 긁적이며 물어봤었지만.. 우연치곤 재밌게도 1Q84에 '호우호우'는 꽤나 등장한다.


b.

소설을 읽는 동안 밤이 되어 하늘을 보게 될 일이 생기면, 항상 달을 찾았다.

그리고 혹시나 달이 두 개는 아닐지 옆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지금의 이 세상을 믿을 수 없어서 인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나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믿을 수 없는 순간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단 생각이 든다.


1500쪽이 넘는 페이지를 비로소 다 넘겼을 때, 나도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생각한다. 그래야만 한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Cover image@Benedetto Cristofani https://www.benedettocristofan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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