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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리어드 Dec 11. 2023

퇴직 후에도 생활의 루틴(routine)을 지키자

58년 개띠의 공부도전기 (10)

영어 단어 중에 routine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입니다. 스포츠에서는 루틴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예를 들어 골프를 보면 티샷(tee-shot)을 하기 전에 일정한 루틴(순서)에 따라 합니다. 우선 공 뒤에서 타겟을 설정한 다음 시험 스윙을 몇 번 하고, 어드레스(공을 치기위한 자세, address)를 취한 다음, 가볍게 손목을 풀어준 후 (전문적인 용어로 웨글이라 한다)  스윙을 합니다. 자기 나름의 루틴을 가지고 있는 골프선수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합니다. 프로 선수들도 자신만의 루틴이 깨지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져 샷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선수와 달리 일반인은 일상적인 생활의 패턴을 루틴(routine)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직장에서 바쁘게 생활을 하다가, 저녁 때 퇴근을 하는 일정한 패턴의 생활을 합니다. 보통 이런 생활 패턴을 20-30년간 유지합니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출근할 곳이 사라지게 되면서 20-30년간 유지된 생활의 패턴이 무너져버립니다. 갑작스런 생활 패턴의 붕괴는 육체적 혼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혼란을 가져옵니다.




퇴직자들을 보면 ‘불면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불면증의 요인은 퇴직 후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지만, 더 큰 요인은 생활의 패턴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퇴직 전에는 바쁘게 생활하다가 퇴직 후에는 갑자기 한가해집니다. 출근할 곳이 없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마땅히 갈 곳과 할 일도 없으니 소파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TV로 시간을 보내기 십상입니다. 그러다 졸리면 낮잠을 자기도 하죠. 저녁에도 다음 날 일찍 출근할 필요가 없으니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 필요도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심야까지 TV시청을 하게 됩니다. 퇴직 전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신체적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잠복해있던 육체적 질병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 붕괴보다도 무서운 것은 정신적 붕괴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 집을 나섰다 저녁에 들어오던 사람이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면 정신적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세상은 쌩쌩 돌아가는데 나만 세상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 듭니다. 또 일하고 있는 사람은 능력이 있고, 자신은 미약하고 능력없는 존재라는 자기비하감에 빠져 고립과 은둔, 신념이나 희망을 상실하는 등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대기업 임원으로 지내다 50대 중반에 퇴직을 했습니다. 몇 번의 전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사회적 활동을 포기하고 집에만 있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그에게는 집이 유일한 도피처입니다.


남편이 퇴직 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커질수록 고통받는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내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 특히 베이비부머들은 인생을 회사에 바쳤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대화, 특히 아내와의 대화가 부족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ㅎㅎ)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보면 역할이 철저히 나눠졌습니다. 남자는 직장에 나가 돈을 버는 일을 담당하고, 여자는 집에서 자녀를 양육하면서 교육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퇴직 후 갑자기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집에 있게 되면 아내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실제 조사에 의하면 퇴직한 남편을 둔 아내의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소위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 중 ‘일식남, 이식놈, 삼식새끼’라는 말이 있죠. 집에서 하루 한 끼 먹는 남편은 남편으로 대접받고, 두 끼 먹는 남편은 ‘놈’이라 불리고, 하루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면 ‘새끼’라는 비속어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내들의 스트레스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죠. 남편이 집에 있으면 아내는 남편이 식사에 신경을 쓰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는데 남편이 퇴직하게 되면 남편에게 얽매이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남자가 퇴직 후 집에 있다 보면 전에 안보이던 자잘한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퇴직 전 부부관계가 좋던 커플이 남편의 퇴직 후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퇴직 후에도 불규칙적인 생활에 빠지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루틴을 정해놓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 등은 정해 놓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낮 시간 동안 집에 머무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죠. 물론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는 하지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집에 머무르다 보면 무력감에 빠지기 쉽고, 또한 아내와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는 퇴직 후 대학 동기들이 조금씩 각출하여 조그만 오피스텔을 임대해 그곳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거나, 공부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제적 형편이나 모임이 없다면 공공 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요즘 공공 도서관은 책뿐만 아니라, 잡지, 신문, 그리고 영화 DVD등이 구비되어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유익한 인문학 무료강좌들이 많습니다. 이런 외부 활동을 하면 퇴직 후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퇴직 후 자칫 빠지기 쉬운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생활의 루틴을 정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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