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의 공부도전기 (6)
직장을 다닐 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직급이 올라가면 월급이 늘어나는 만큼 스트레스도 늘어납니다.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주위에서 들려오는 희망퇴직 등 불안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 ....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다 퇴직을 하게 되면 일단은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여행을 다니든지 바쁜 직장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여유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조금씩 불안증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불안증을 느낄 여유도 없이 생업을 찾아야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어 그런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베이비부머에게는 불안증이 찾아옵니다. 정신의학에서는 길고 무거웠던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정신위생적으로 오히려 더 위험한 시기라고 합니다.
유태계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부담 속에서 살기 위해 온갖 일을 해냈던 사람들이 정작 석방되는 순간, 정신적 위기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압력(스트레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위험하게 작용한다는 면에서 우리가 느끼는 부담감은 소위 ‘잠수병’과 닮았습니다. 물속에서 수면으로 갑자기 빨리 올라가게 되면 갑자기 수압이 낮아지면서 혈액 속에 기포가 생겨 몸에 통증을 유발하는 것처럼요.
이와 비슷한 사례로 퇴직을 하게 되면서 수십 년간의 직장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들 수 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긴장의 이완과 스트레스의 부재, 과도한 시간의 여유는 퇴직자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퇴직자들은 때맞춰 적합한 새 일을 얻지 못하면 일을 했던 때보다 정신적으로 더 안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퇴직을 하면 직장 다닐 때처럼 아등바등 일할 필요가 없어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나 밥벌이를 넘어서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만한 과업의 빈자리를 느껴 정신적 불안감에 내면이 뻥 뚫린 것을 스스로 인지하게 됩니다. 이때 불안감과 함께 무력감, 삶의 무의미 등이 찾아옵니다. 퇴직자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팍삭 늙거나 암이나 중병에 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뮌헨 대학의 구스타프 V.베르크만 병원의 교수들은 예전에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을 연구한 결과 내과 질환, 즉 심장과 폐, 소화기와 신진대사의 질병들이 그들이 수용소의 압력에서 풀려나온 후 발병했음을 알아냈습니다. 베르크만 병원은 이 관찰을 토대로 너무 지나친 부담뿐 아니라 급작스러운 해방도 인간에게 해가 된다면 어떻게 해서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숙고했습니다.
결론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인간은 삶의 목표와 적절한 임무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도전을 하되 자신이 수행해낼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삶이든 견딜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다고요.
퇴직 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 추구해야할 목표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목표와 의미를 찾는 방법 중 가장 쉬운 일은 일을 하는 것이지만 퇴직한 베이비부머에게는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60세가 넘으면 기술직이 아닌 이상 아무리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 하더라도 경력을 살릴만한 직업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굳이 생계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봉사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도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