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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Nov 17. 2023

아니 저 친구는 저만큼 힘든데?

상대적 힘듦, 절대적 힘듦

아이는 너무 예쁘고 소중하다.

하지만 육아가 힘든 순간에는 정말 눈물이 쏙 빠지게 힘든 날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도 셋째는 끊임없이 자길 안으라 매달리고, 첫째 등교 준비를 시켜야 하는데 느릿느릿 밥은 안 먹고, 둘째는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집에 더 난장을 치며 옷을 골라달라며 울고 있다. 오후에는 시누언니네 부부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손님이 편히 묵으시도록 방을 치우고 장도 좀 봐놓고 싶은데, 또 오늘 하필이면 그날이 겹쳐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신랑은 최근에 부서 이동으로 바빠져 어제도 퇴근이 9시, 그제도 8시 반... 새벽 출근에 야근이 익숙해지고 지고 있다. 물론 돈 벌어오는 자의 고충을 익히 알지만 독박 육아의 고충 속에 사는 나는 이젠 아련히 기억나지도 않는 나의 출근길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힘들어 죽겠지만 최대한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고 싶지 않아서 심호흡을 하고 감사한 것들을 억지로 떠올려 본다. 


감사한 것을 떠올리자. 문득 주변에 아이가 넷, 다섯에 가족이 아프시거나 본인이 아프거나 한 경우가 가까이 있어 그들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힘들다 투정 부리고 싶은 건 진짜 그냥 투정이구나 싶어 진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며 그래 어쩜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해 빠진 소리나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문득 내가 다시 한심하게 느껴지고 만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발로 뻥 차버린다. 누군 이만큼 힘들고, 누군 이만큼 힘든데 나는 겨우 이 정도로 힘들다 말할 수 있는가. 


애는 겨우 셋 밖에 없는데, 몸뚱이가 건강하니까 생리도 하는 거지, 남편은 직업이 있으니 출근도 하고, 우리 집은 비도 눈도 안 새는 지붕도 있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세기가 하는데 뭐가 불만인가 대체. 애들이 애들이니까 울고 보채지. 첫째라도 무상으로 공립학교를 보낼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가, 도시락 여섯 개 싸는 게 뭐 대수라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돌밥돌밥 매 끼니를 준비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굶지 않고 장을 볼 수 있고, 아이들을 데려다줄 차도 있는데 얼마나 부유한가. 버스를 타고 데려다주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왕복 다섯 번 라이드가 뭐가 힘들다고 투정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방과 후 활동까지 시키고 있으면 이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지 않은가! 나라가 전쟁 중인 것도 아니고, 우리 집엔 심지어 온수도 잘 나오는데 약해 빠진 정신은 혹한기 훈련이라도 보내야 제대로 돌아올 것인가.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잘 달래 지지 않았다. 서럽고 화가 났고 지치고 힘들었다. 감사한 것을 억지로 떠올려 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이 시간이 버거운 것은 버거운 걸, 어쩌란 말이야. 내가 힘들다는데 내 감정이 지금 화가 난다는데, 그걸 무시한다고 사라져 지는 것이 아닌데 어떡하라고. 주변에 아이가 더 어리고 많은 사람이, 가족이 아픈 사람이 지금 엄청 힘들다고 해서 나의 힘듦이 '안 힘듦'이 되진 않는 걸. 그들이 나보다 더 아프다고 나의 허리 아픔과 두통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 각자의 깜냥에 맞는 어려움을 주셨을 텐데 나는 스스로의 힘듬이나 아픔을 우습게 여기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를 다그치고 다그치다 보면 언젠가 더 강해져 있을 것이라 믿기에 투정 따위는 받아주질 않는다. 초등학교 때 급식을 남기면 '소말리아에 아이들은 굶고 있는데'라는 말이 늘 따라오지 않았는가. 소말리아에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정말 유감이지만 내가 지금 음식을 다 소화하지 못하겠는 걸, 억지로 욱여넣는다고 그들이 배가 불러질 리 없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굶고 있는 것은 내 탓이 아닌데, 상대적 고난의 잣대를 들이밀어 꾸역꾸역 입 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 태도가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더 나에게 친절해야겠다. 나도 힘든 날이 있을 수 있지. 긍정적이고 감사한 태도가 기본값으로 설정은 되어 있는데 아닌 날도 있을 수 있지. 내가 무슨 로봇인가. 궤도에서 이탈하면 그냥 잠시 기다려주고 쉬면 다시 본 궤도로 돌아올 것을 잘 알면서 뭘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내가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나를 더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오래간만에 들어온 브런치에 잔뜩 투정을 부려본다. 여긴 그래도 나의 숨 쉴 구멍이니까.


괜찮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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