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Mar 03. 2022

자기 계발의 늪에 빠진 당신

#자기 계발 #동기 부여 #엔도르핀 #도파민 #나아지고 있다는 착각

유튜브는 새해가 되면 소위 떡상하는 채널이 있다. 바로 자기 계발 채널.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한 듯하다. 미국도 새해만 되면 신년 계획을 세우고, New year, new me! 를 외치며 의지를 다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작심 3일일지라도, 다시 새해의 계획을 야심 차게 세운다. 계획을 세우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움직이려는 자세는 얼마나 설레고 멋진가.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이제 신정도 구정도 지났으니 살펴보자. 왜 매 번 야심 차게 계획을 세우지만 나는 발전이 없는가 말이다. 해는 바뀌었는데 대체 왜 매년 신년 계획이 똑같은지. 답은 여기에 있다. 야심 찬 계획이라는 것은 대부분 나의 워너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꿈은 완성된 형태로 꾼다. 그러니 결과로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만 바라보며 목표를 세운다. 


복근에 식스팩이 자리 잡은 몸, 원어민처럼 술술 구사하는 외국어, 책장에 가득 자리 잡은 365권의 다 읽은 책들로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는 그런 상상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 완성까지 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내 시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실은 잊는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 내고, 새로운 단어를 외워도 외워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는 좌절을 견뎌내며 다시 외우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글씨를 써내려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고3도 아닌데 새벽 5시 졸린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내 계획에 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 의지가 약해 자꾸 손에 폰이 잡히니, 잡히지 않도록 멀리멀리 집어치워놓는 수고는 덤이다.   


그러니 우선 쉽게 시작해보려 한다. 자기 계발, 동기 부여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상당히 자극적이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나는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보고 있는 순간 내 꿈을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벅차다. 잃었던 나의 꿈을 다시 찾은 것 같아 행복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온 카톡 메시지에 대답을 하고 이어서 관련 영상을 보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영혼의 양식을 쌓기 전에 우선 몸의 양식부터 든든히 배에 쌓는다. 운동을 하기 전에 홈트 영상이 뭐가 괜찮은지 찾아보다가 관련 검색으로 추천되는 건강 보조제와 다이어트 식단까지 섭렵하여 공부를 해본다. 운동도 알고 해야 제대로 하는 듯하다. 건강과 운동에 대해 많은 정보를 습득했으니 든든하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다음 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파이팅 넘치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듣는다. 동기 부여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그래 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며 확신에 차고 설렌다. 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럼 오늘도 다시 신나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어서 어떤 책부터 읽어볼지 유튜브에서 괜찮은 책들을 찾아 요약된 서평을 보기 시작한다. 이런 책도 저런 책도 정말 나에게 필요한 내용일 것 같아 우선 캡처를 해둔다. 책을 보다 보니 관련 영상으로 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까지 요약해주는 채널들이 있다. 오랜만에 문학에 빠져들어 보는 기분으로 감상에 젖어 한참 영상들을 보다 보니 문학 소년, 소녀로 돌아간 기분을 만끽해 본다. 역시 세상에 좋은 정보가 넘쳐난다. 오늘도 많은 정보를 습득했으니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다. 


또 다음 날에는 늘 보던 자기 계발 채널이 아니라 새로운 추천으로 정말 괜찮은 자기 계발 채널을 또 찾아냈다. 내용도 좋은 데다가 심지어 원어민의 인터뷰 내용과 영어 자막까지 지원되어 이건 보고 있으면 영어 공부까지 저절로 되는 1석2조의 효과가 있다. 원래 보던 채널에 이 자기 계발 채널도 추가로 구독을 한다. 이 좋은 시절에 태어나 내가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매일 무료로 보고 있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구독과 좋아요는 필수다. 이에 더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영어 공부 채널들도 둘러본다. 영어 강사 추천 영상부터 보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강사를 찾아 채널들을 쭉 둘러본다. 아무래도 직접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미드를 반복해서 들어보는 것이 더 나와 잘 맞을 것 같다. 영어도 흥미가 없으면 지속할 수 없으니 우선 나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것들로 둘러본다. 미드도 처음부터 영어로 들으면 거의 안 들리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한다. 우선은 자막을 켜고 내용을 이해한 다음 자막 없이 쉐도잉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넷플릭스로 넘어간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다. 


자, 이것이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작심삼일의 이유이다. 분명 야심 차게 목표를 세웠지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는 과정이 따른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목표 지점을 설정했으면 시동을 걸고,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는 당연히 넘어지고 다치고 깨친다. 가려고 보니 바퀴에 바람이 없을 수도, 기름이 없을 수도 있다. 가려고 보니 내가 가려는 길이 빗길일 수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일 수도, 눈길일 수도 있다. 비포장도로일 수도 있고 때론 내비게이션을 잘 못 읽어 이상한 길로 접어들어 한참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한 발자국이라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만 바라보고 도착하면 무엇을 해야겠다 상상만 하고 있으면 결코 갈 수 없다. 


이것이 자기 계발의 늪이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을 타인의 성공을 보며 대신 얻지 말자. 그것은 뇌를 속이는 일이다. 목표를 설정했다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시동을 켜고 한 발자국 걷는 일이다. 어제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내 모습에서 엔도르핀을 얻어야 한다. 일주일 전보다 하루에 나아간 양이 더 많아졌다면 그 과정 자체에서 도파민을 얻어야 한다. 점점 더 실제로 나아지고 있는 내 모습에서 진짜 자기 계발이 시작된다. 당장 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책을 집어 들자. 이불을 걷어차고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보자. 그때 진짜 내 꿈에 더 가까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벽 4시에 이불을 박차고 나와 야심 차게 책을 집어 들었으나 함께 미라클 모닝에 참여하고 싶은 둘째 아들의 패기에 좌절스러움을 딛고, 재우고 살며시 나와 다시 책을 잡는 순간, 이번엔 셋째 베이비가 일어났네 하아.. 재우고 기어 나와 다시, 또다시 책을 집어 드는 나란 사람은... 성공을 꿈꾸는 엄마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 지금 바로 행복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