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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Nov 16. 2023

 대낭만 시대

[마흔에 파리가 좋아질 줄이야] 프롤로그-1편

마흔 쯤에 접어들면, 회사를 10년 정도 다니면, 사람은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법이다. 현재를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다는 것 같은. 


[3개월 해외 단기연수 모집]


아 회사에 이런 제도도 있었지. 혜택은 비행기표 제공 단 하나. 사내에 지지리도 인기없다고 소문난 그 제도. 3개월? 그동안 뭘 배우고 뭘 하란 말인가. 체류비도 안 주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건만, 2021년 12월의 그 어느날은 달랐다. 마침 회사 근처 정신과를 다녀온 직후였다. 떠나고 싶다…떠나고 싶다…떠날까? 그렇게 내 인생 최고 대낭만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파리에서, 대낭만 시대

마침 3개월 연수 모집 마감일이 그날이었다. 어디서 뭘 한다고 쓰지. 10년쯤 언론사 기자로 살아보니 '해외'하면 반사적으로 코트라 홈페이지를 찾게 되더라. 마침 최근 올라온 리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순환경제법 현황'이라는 제목. 


프랑스? 파리? 대학 시절 배낭여행으로 '거쳐간' 뒤 한 번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곳이었건만 쫓기듯 코트라 리포트를 보면서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폭풍 우라까이를 시작했다. 리포트에는 2022년부터 프랑스의 슈퍼마켓에서 비닐 및 플라스틱의 퇴출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거의 그대로 지원서에 옮겨적은 후 한 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3개월 체류하며 '플라스틱 제로 시티' 체험기를 써보겠습니다". 


몇 주 뒤. 연수를 가서 기사를 쓴다는, 그것도 구태의연한 '체험 해보니'식의 기사를 쓴다는 뻔뻔한 지원서는 놀랍게도 채택됐다. 인기 없는 연수라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는 후문을 나중에 들었지만, 어쨌든 선발됐다. 

잊지 못할 세느강

그렇게 나는 2022년 중 파리에서 3개월을 보내야 했다. 이 사실을 아내와 딸에게 전해야 했다. 


나는 당시 우울증인지 공황장애인지 알 수 없는 증상을 겪고 있었다. 매사에 날카로운 상황이었고,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게 아내에게 공개했으며, 아내는 다행히 내 사정을 이해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의 한 마디를 항상 생각하려 했다. 


"뭐가 됐든 환자님 마음 속에 증폭되는 그 분노는 절대 환자님 본인의 진심이 아니니, 절대 특정인을 향해 표출하면 안 됩니다." 


그 말을 지키려 했다. 꼭 지키고 싶었다. 실제 그렇게 해왔던 것 같긴 하다.


<계속>

일하는 것도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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