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파리가 좋아질 줄이야] 프롤로그-1편
마흔 쯤에 접어들면, 회사를 10년 정도 다니면, 사람은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법이다. 현재를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다는 것 같은.
[3개월 해외 단기연수 모집]
아 회사에 이런 제도도 있었지. 혜택은 비행기표 제공 단 하나. 사내에 지지리도 인기없다고 소문난 그 제도. 3개월? 그동안 뭘 배우고 뭘 하란 말인가. 체류비도 안 주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건만, 2021년 12월의 그 어느날은 달랐다. 마침 회사 근처 정신과를 다녀온 직후였다. 떠나고 싶다…떠나고 싶다…떠날까? 그렇게 내 인생 최고 대낭만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마침 3개월 연수 모집 마감일이 그날이었다. 어디서 뭘 한다고 쓰지. 10년쯤 언론사 기자로 살아보니 '해외'하면 반사적으로 코트라 홈페이지를 찾게 되더라. 마침 최근 올라온 리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순환경제법 현황'이라는 제목.
프랑스? 파리? 대학 시절 배낭여행으로 '거쳐간' 뒤 한 번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곳이었건만 쫓기듯 코트라 리포트를 보면서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폭풍 우라까이를 시작했다. 리포트에는 2022년부터 프랑스의 슈퍼마켓에서 비닐 및 플라스틱의 퇴출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거의 그대로 지원서에 옮겨적은 후 한 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3개월 체류하며 '플라스틱 제로 시티' 체험기를 써보겠습니다".
몇 주 뒤. 연수를 가서 기사를 쓴다는, 그것도 구태의연한 '체험 해보니'식의 기사를 쓴다는 뻔뻔한 지원서는 놀랍게도 채택됐다. 인기 없는 연수라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는 후문을 나중에 들었지만, 어쨌든 선발됐다.
그렇게 나는 2022년 중 파리에서 3개월을 보내야 했다. 이 사실을 아내와 딸에게 전해야 했다.
나는 당시 우울증인지 공황장애인지 알 수 없는 증상을 겪고 있었다. 매사에 날카로운 상황이었고,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게 아내에게 공개했으며, 아내는 다행히 내 사정을 이해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의 한 마디를 항상 생각하려 했다.
"뭐가 됐든 환자님 마음 속에 증폭되는 그 분노는 절대 환자님 본인의 진심이 아니니, 절대 특정인을 향해 표출하면 안 됩니다."
그 말을 지키려 했다. 꼭 지키고 싶었다. 실제 그렇게 해왔던 것 같긴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