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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Nov 18. 2023

우울증 약은 쓰레기통에 넣고 파리로  

[마흔에 파리가 좋아질 줄이야] 프롤로그-2편

파리에서의 3개월 연수 소식을 전달하면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파리로 떠나려면 프리랜서인 아내는 그 기간에 일을 받지 못할 것이다. 딸래미도 재미있게 다니고 있는 유치원을 그만둬야 할 것이다. 


설마 혼자 다녀오라고는 안 하겠지.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어서 대화를 하는 것 자체도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가서 밥이고 나발이고 다 제쳐두고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연수 사실을 알려야 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퇴근 길에 피자 한 판을 사갔다. 그리고 보니 마음과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퇴근 길에 뭔가를 사간 게 꽤 오래 전 일 같았다. 모처럼 죽상을 풀고 뜨끈한 피자를 뜯어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2022년 중 출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3개월 단기 연수에 선발됐어."

"응?"

"내년 중 날 잡아서 3개월간 파리서 살아야 해." 

"잘됐네. 언제쯤 가?"

"코로나가 연말쯤 잠잠해지지 않을까. 아이 유치원도 생각하면 10~11월쯤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근데 왜 하필 파리야? 도시는 못바꾸나."


피식. 그러게. 학생 때  한 번씩 거쳐 가본 바 있지만 이름 값만 높고,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며, 정작 볼 건 별로 없을 것 같은 도시. 영어도 잘 안 통한다는 곳 아닌가. 사람들도 까칠할 거 같고. 하루만에 지원서를 쓰다 보니 코트라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고, 낙장불입 상태라는 점을 설명했다. 다행히 혼자 가란 말은 안 나왔다. 그저 감사합니다.


그렇게 밤새 파리에 대해 검색하고, 어디에서 살아볼지를 추려보고, 간단한 불어들을 메모하면서, 현지 물가를 따져보고 하는 나날들이 10개월간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과를 찾지 않게 됐다. 힘들 때마다 먹으려고 받아뒀던 약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마음의 병이 나은 상태는 아니었다. 출국 전날까지 발작과 같은 상태가 몇 번 찾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뭔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의 뜨거운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출국 하루 전날 발작의 트리거는 '운전 면허증'이었다. 국제면허증을 받으려 했지만 회사 일과 출국 준비 등이 겹치며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게 발작으로 이어졌다. 이럴 땐 다른 수가 없다. 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소리를 지르고 끙끙 앓다 보면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 그 이후에는 가족에게 사과를 한 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짐 싸기를 마무리했다. 집안 청소를 새벽까지 한 후에야 마침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3개월을 파리에서 살 짐이 빅 사이즈 캐리어 4개와 손 가방 두 개에 모두 들어갔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내 마음의 병까지 모두 짊어지고 2022년 가을에 파리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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