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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Aug 03. 2021

빈의 한 옷걸이에 대하여

[그 도시에 대하여]③

오스트리아 빈, 2015년 10월


"설레서 잠이 안 와"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 아내가 한 말이다. 아내는 2010년 국내에서 있었던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전시회를 본 이후 항상 빈에 가는 것을 꿈꿨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2년 차에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차례 다녀온 곳이어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빈에 간 김에 반드시 빈 음악협회(Musikverein)에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보고 싶었다. 2009년 빈에 갔을 때 이곳의 브람스홀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나름 훌륭한 경험이었다. 음악도 좋았지만, 1870년에 지어진 중후하면서 화려한 음악협회 건물, 근사한 옷을 입고 클래식을 들으러 온 유러피언들을 보는 재미도 컸다. 무엇보다 이때 클래식을 듣고 졸지는 않는다는 확신 정도는 생겼다.


마침 우리가 빈에 갔을 때 골든홀로 불리는 대강당(Große Saal)에서 빈 필하모닉 공연이 있었고 이를 예약했다. 문제는 저질 체력. 낮에 아내와 나는 벨베데레궁에 있는 클림트의 작품을 보러 갔었고,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다. 궁궐의 광활한 크기를 간과했다.


사실 직장인이 10일 남짓 휴가를 내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면 시차적응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콘서트가 있던 날 우리는 오후 3시쯤 숙소에서 딥 슬립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컴컴해진 하늘.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공연시작 30분 전쯤 됐던 것 같다. 숙소와 음악협회 건물이 가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이었다. 헐레벌떡 깨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클래식을 감상한답시고 챙겨 온 가장 깔끔한 옷들을 트렁크에서 꺼냈다. 10월 말의 빈은 초겨울 날씨처럼 추워서 코트까지 걸쳤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다.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협회(Musikverein)

다행스럽게도 시간의 신은 이럴 때 가끔 우리편을 들어주고는 한다. 호텔문을 나서자 마자 트램이 왔고, 트램은 신호 한 번 안 걸리고 5분 만에 음악협회 앞에 도착했으며, 우리는 우사인 볼트에 빙의해 음악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한 표까지 찾자 공연 시작까지 한 3분 남았던가. 그런데 입장에 앞서 코트를 맡기고 들어가야 한단다. 아 왜 이렇게까지 배려를 하세요..


여유있게 도착해서 현지인 코스프레를 하며 코트를 넘겨주고, 직원과 한 두 마디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유로피언들의 분위기까지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헐레벌떡 코트를 넘겨주고 "쏘리"와 "땡큐" 혹은 "당케 쇤"을 연발하며 어떻게 어떻게 우리의 좌석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미 청중들이 다 홀에 들어가 있어서인지 코트를 받던 직원이 여유있게 우리를 응대해줘 마음은 편했다.

  

정신을 차리며 골든홀 안쪽을 보니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가 진행되는 그곳이 맞다. 어릴 때부터 빈 신년 음악회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간접 경험이라는 점에서 묘한 쾌감과 설렘을 줬다. 차분한 황금색으로 도배된 홀 내부 역시 환상적이었다. 2009년 당시 브람스홀만 봤었던 아쉬움을 풀었다.


연주곡은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의 '일곱 봉인의 책(Das Buch mit sieben Siegeln)'이었다.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지라 따분해질 수도 있었을 건데 그래도 이 곡은 대규모 합창단이 함께하는 것이어서 그게 덜했다. 곡 자체는 좀 난해했던 것 같지만 황금색 홀을 쩌렁쩌렁 울리는 합창단의 목소리가 집중력을 유지하게 해줬다. 오후 딥슬립을 해 체력이 풀 충전이 된 게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빈 필하모닉 여성 합창단원들이 어깨 쪽에 맨 스카프 같은 것을 직관한 것도 좋았다. 음악감상을 좋아하는지라 빈 필하모닉의 꽤 유명한 연주들은 유튜브로 찾아듣는 편인데, 여성 합창단원들이 굉장히 힙하게 생긴 스카프를 어깨에 맨 것이 인상적이었었다. 클림트의 황금색이 연상되는 스카프. 그 힙한 스카프를 공연 내내 계속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때 저 스카프를 구매할 방법은 없나 여기저기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힙하기 그지없는 빈 필 여성 합창단의 스카프. 기회만 된다면 사고 싶다. 가격만 적당하다면..(사진은 유튜브 캡처)

끝없이 이어진 청중들의 물개박수를 끝으로 공연은 끝이 났다. 당연히 코트부터 찾으러 갔고, 들어올 때와는 달리 다소 여유있는 미소와 함께 코트를 돌려받았다. 직원들은 쇄도하는 청중들의 코트 반환 요청에 정신이 없었다. 묘한 상황 반전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여행 후. 그 코트를 입었을 때 뭔가 코트가 더 무거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여행으로 기가 허해졌나. 아 그러기엔 오른쪽 한쪽만 무거운 거 같다. 과도한 업무로 한쪽 어깨가 내려 앉은 것인가. 아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자 뭔가 메탈 재질의 묵직한 게 손에 들어왔다. 아 이건 또 뭐지. 술을 마셔도 도벽은 없는데 이건 또 뭐지...


알 수 없는 쇠붙이가 내 손안에 있었다. 문고리 같기도 하고, 걸개 같기도 하다. 손때가 많이 탄 물건이다. 이게 왜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인가. 어디서 온 것인가. 미스터리에 빠질 찰나 해당 코트를 입고 빈 필하모닉을 보러 갔던 게 떠올랐다. 코트를 음악협회 측에 맡기고 콘서트를 관람했지. 이 코트가 유일하게 타인에 맡겨졌던 건 그 순간이다.


퍼즐이 맞춰졌다.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나로부터 그 코트를 받은 음악협회 직원은 옷걸이에 내 옷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2시간여가 지나고 여유있어진 나에게 옷을 건네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코트까지 신속하게 줬어야 하므로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코트를 한 번에 2~3벌씩 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150년이 된 음악협회의 벽에 박혀있던 옷걸이 하나가 뽑혀 나온 것이다. 그게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운이 나쁘게(?) 내 코트의 주머니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빈 음악협회 옷걸이 추정' 쇠붙이

우리집에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여기 저기서 사오고 받아온, 기념할만한 물품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다. 회사에서 준 상패부터, 여행 기념품까지 다양하다. 이곳의 한 자리를 이 빈 음악협회의 옷걸이 추정 쇠붙이가 차지하고 있다. 돌려주고 싶어도 빈을 다시 갈 인연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소포로 붙이기에는 빈 음악협회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이게 너네 것이 맞냐고 물어보고 맞다면 줘야 할 건데...


그렇게 귀차니즘에 방치된 빈 음악협회 옷걸이 추정 쇠붙이는 이역만리 고려국 직장인의 방 한 구석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다.


빈에 돌아갈 수 있다면 돌려줄 수 있을까. 일단 코로나19만 끝난다면 언젠가 빈에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참석자는 매년 추첨으로 뽑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는 매년 여기에 응모해왔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다시 응모를 시작할 것이다.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를 그 멋진 홀에서 듣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삶에서 꿈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 작은 꿈이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삶의 흐름이 중요하다. 언젠가 빈 신년 음악회에 당첨이 돼서 아내에게 "설레서 잠이 안 와"라고 해보는 게 꿈이다. 그 꿈이 이뤄지면 옷걸이 추정 쇠붙이를 돌려줄 계기가 마련될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빈 음악협회를 다시 방문한다고 해서 이게 내 코트 주머니에 들어온 사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거 너네 옷걸이 추정 쇠붙이야. 2015년에 내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었어"하면서 주면 나를 미친사람 취급하진 않을까. 오늘도 빈 음악협회 옷걸이 추정 쇠붙이를 보며 별의별 생각, 기대, 우려를 다 하고 있다.

2015년 10월 그날의 공연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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