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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Jul 26. 2021

몰디브의 빅 샤크에 대하여

[그 도시에 대하여]②


몰디브, 2014년 3월


신혼여행지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수르 멘탈로 중무장하는 결혼 준비 기간이 아니면 지를 수 없는 곳,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휴양지, 아침에 눈을 뜨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아내와 뜻을 모았다. 그리고 몰디브를 질러버렸다. 결혼 날짜를 잡고 곧바로 한 일이 몰디브행 비행기표를 끊는 일이었다.


몰디브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직항이라던 비행기는 알고 보니 스리랑카 콜롬보를 거쳐가는 '반 직항'이었다. 스탑오버 포함해 몰디브까지 거의 10시간쯤 걸렸던 거 같다. 이럴 거면 하와이나 갈 걸이라는 투덜투덜이 시작될 즈음 눈이 부신 몰디브의 바다와 라군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와이? 그게 어디요? 오오오 소리를 내며 창문에 코를 박았다.


몰디브 말레공항에서 나오면 각 리조트들의 부스가 있다. 여기를 통해 경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리조트로 날아가는 구조다. 신혼부부들 쌍쌍이 각 부스들을 찾아 총총 걸어가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닷새 뒤 그 얼굴들과 또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경비행기에서 봤던 몰디브의 바다와 라군은 여전히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눈을 뜨자마자 숙소 앞 파워에이드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에서 헤엄을 쳤다. 디즈니 만화에서나 보던 물고기들과 함께 수영을 하는 특별한 경험. 발코니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으면 돌고래들이 점프를 하며 무리지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고래상어를 바다 한 가운데서 마주하는 벅찬 순간도 있었다. 밤이 되면 쏟아질 듯한 별들이 하늘을 장식했다.

숙소 앞에서 가오리와 함께 헤엄칠 수 있었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바다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입수를 하려던 찰나,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리조트를 정비하는 분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남자 "샤아~~~크."

나 "?????"

그 남자 "샤아~~~~~~~~~크. 빅~~샤~~~아크."


샤크? 빅 샤크? 상어? 큰 상어? 이게 무슨 말일까. 그가 나에게 손을 까닥까닥하며 물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또 시작됐다.


그 남자 "샤아~~크. 빅~~~~~~샤~~아아아아아아아크."


머릿속에서 그의 눈빛, 제스처, 그리고 "샤아아아아크"가 번역되기 시작했다.


"동양에서 온 청년. 몰디브에 온 걸 환영하네. 사실 내가 상어, 그것도 엄청나게 큰 상어가 나온 포인트를 알지. 내가 그대에게 몰디브의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주갔어. 날래 따라오라우."


홀린 듯 나는 그를 따라갔다. 나름 수영을 할 줄 알지만, 몰디브 현지인을 따라가기에는 힘겨웠다. 그는 나에게 숨을 쉴 시간도 줬고, 힘을 내라는 듯 밝게 웃어주기도 했다. 나도 빙구처럼 "허허허허"하며 따라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캡틴 몰디브'를 따라 한 10분쯤 헤엄쳤을까. 낯익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이 리조트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닌가. 레스토랑은 수상에 지어진 목조 건물이었다. 파도치는 모래사장에 기둥을 박았고, 그 위에 바닥을 깐 후 건물을 올린 모양새였다. '캡틴 몰디브'는 그 수상 건물 바닥 아래쪽 물속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다시 홀린 듯 그를 따라 잠수를 했다.


그늘이 진 곳이라 그런지 물고기가 많았다. 큰 물고기도 있더라. 방어나 부시리 같이 생긴 물고기들이 떼지어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빅 샤크는 어디있는 것인가. '캡틴 몰디브'를 쳐다봤더니 그는 나에게 아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숙소까지 헤엄쳐왔다.


도착한 후 그와 악수를 했다. 그에게 보살 미소를 지어보이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래 고마웠어. 상어는 없었지만 몰디브의 방어와 부시리도 나름 재밌었어. 아침에 빡세게 운동시켜준 것도 고마워. 잘 가고 다시 보지는 말자."


그런데 그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왼손이 동그랗게 말아지기 시작했다. 김흥국씨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모양. 다시 텔레파시가 오갔다.

대략 이런 손 모양

나 "10달라는 너무 많소, 5달라로 합시다."

그 남자 "10달라."

나 "7달라."

그 남자 "10달라."

나 "미치겠구만 8.5달라."

그 남자 "10달라."

나 "알겠소 10달라."

그 남자 "오케이 10달라. 땡큐."


그렇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영복을 입은 채 숙소 안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10달러를 챙겼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도대체 어딜 다녀온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말없이 10달러만 들고 나갔다. 그리고 '캡틴 몰디브'에게 드렸다. 그는 나와 다시 악수를 한 후 사라졌다. 이 광경을 아내는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방어·부시리 관람비로 10달러를 조공한 스토리는 이렇게 끝이 난다.

'빅 샤크'는 10달러를 주고도 못봤지만 '베이비 샤크'는 쉽게 볼 수 있었던 몰디브

관광지에서 정많은 현지인을 만나 뜻밖의 추억을 만든다. 이런 스토리를 그동안 책에서, 영상에서, 수없이 봤고, 그런 게 판타지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현실은 기브 앤드 테이크. 여행이든 삶 속에서든 상대의 호의를 무조건적으로 바라면 안 된다는 생각도 확고해졌다. 그게 현실적일뿐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캡틴 몰디브'도 어쨌든 본인의 피 같은 근무시간을 쪼개 나에게 투자한 게 아닌가.


적어도 나만은 어느 정도의 낭만을 가지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날 배신감의 반작용인 것 같다. 한 번씩은 상대에게 나만의 '빅 샤크'를, 조건없는 호의를 베풀고 싶다는 생각. 매사에 친절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 그러면 또 그쪽이 조건없이 '빅 샤크'를 내게 소개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뭐야 이거 그냥 '기브 앤드 테이크'잖아.


내로남불은 역시 인간의 본성인 것인가.

몰디브에서는 리조트를 가기 위해 타는 경비행기도 하나의 액티비티로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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