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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Oct 15. 2021

뉴욕의 한 피아니스트에 대하여

[그 도시에 대하여]⑤

미국 뉴욕, 2017년 2월.


학생 시절인 2006년 1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약 2개월 반을 뉴욕에서 체류한 후 나는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뉴욕뽕(?)을 맞게 됐다. 취직을 하면 정기적으로 뉴욕을 방문하겠노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뉴욕에서 아예 취직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까지 했다. 당연히 이뤄지진 못했지만. 아직도 언젠가는 뉴욕에서 뉴요커로 살 기회를 호시탐탐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뉴요커 워너비가 됐지만, 정작 뉴욕에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서다. 취직을 하고, 돈을 모으고, 연애를 하고, 결혼 준비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일상을 보내다 보니 뉴욕에 갈 기회 자체를 잡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팬데믹이 그때는 올 지 몰랐으니까. 언제든 갈 수 있을지 알았으니까. 여하튼 그랬다.


10년 만에 방문한 뉴욕에서는 10년 전에 못해본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학생 시절 정말 돈이 없어서 거지처럼 뉴욕 이곳저곳을 다녔었다(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 한번 가는 것도 큰 결심을 해야 가능했을 정도다. 커피는 골목 모퉁이의 델리에서, 아니면 던킨을 이용했다. 던킨의 드립커피가 당시 1달러가 안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대로 소박한 플렉스가 이뤄졌다. 스타벅스·블루보틀은 물론 첼시·윌리엄스버그의 카페도 원없이 가보고 스테이크도 썰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10년 전에 돈이 없어 못 갔던 유명 재즈클럽 '블루노트'에서 공연도 보려 했다. 


유명 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의 '블루노트' 공연을 한국에서 예약하고, 아내와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맥코이 타이너는 1938년생으로, 전설적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인물이다. 기대가 컸다. 입장료는 1인당 45달러. 10달러짜리 맥주 한 병씩 마시면 팁까지 해서 60달러 안으로 묶겠구나라고 순진한 생각을 했다. 뉴욕의 살인적 물가를 생각하면 싼 공연이라 생각했다.    


'블루노트' 자리에 앉은 즉시 지름신이 발동했다. "예전에 못해본 거 다해보자"는 생각이 또 발동되며 메뉴판에 있는 영롱한 색깔의 칵테일에 눈길이 갔다.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 오오 뉴요커 간지 그란도시즌. 아내와 꽤 고가의 칵테일 두 잔을 시킨 것으로 기억한다.

저 예쁜 색깔 때문에 지르게 된 '블루노트'의 칵테일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칵테일을 홀짝이는 허세를 부리고 있을 때 오프닝 밴드의 연주가 시작됐다. '블루노트'의 명성답게 연주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맥코이 타이너가 나올 차례였다. 사회자가 소개를 마친 뒤 박수가 쏟아졌는데 맥코이 할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왜 안 나오세요?


80세의 맥코이 할아버지는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걸어오고 있었다. '블루노트' 2층에서 한 할머니의 부축을 받고 초속 10cm 정도 수준으로 걸어오시는 중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게 힘겨워보였다. 멋진 정장을 차려입으셨지만 다리와 팔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눈을 한 번씩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한 질문은 분명했다. 아니 걷기도 힘들어 보이시는 저 할아버지가 피아노를 치실 수 있다고요? 손에 쥔 칵테일 잔이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맥코이 할아버지는 피아노 앞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여전히 초속 10cm 속도였다. 저 할아버지는 그냥 피아노 앞에만 앉아있고, 세션 밴드가 다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맥코이 할아버지는 무대에 도착하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맥코이 할아버지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르신이 팔을 들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맥코이 타이너의 팔이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속 10cm로 걸어 나오시던 그 속도가 아니었다. 반전의 반전. 


강렬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손가락 끝에 망치가 달린 것 같았다. 세션 밴드는 그 압도적인 피아노 소리를 서포트하는 데 집중했다. 피아노를 치고 있던 맥코이의 등이 그렇게 넓어 보일 수 없었다. 거인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비루한 문장력으로 그날의 공연을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굳이 인용을 하자면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this is it'에 나온 한 마디를 따올 수 있겠다. 잭슨은 공연 준비를 하면서 키보드 연주자에게 조언을 한다. "달빛에 미끄러지듯이 쳐보세요". 


영화를 볼 때 '달빛에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뭘까 감을 잡지도 못했는데, 맥코이 타이너의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듣고 잭슨의 말을 100%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피아노 앞에 앉은 맥코이 타이너의 등 

맥코이 타이너는 약 50분 동안 황홀한 순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한 후 퇴장했다. 퇴장하실 때는 역시 초속 10cm의 속도였다. 거인이 다시 '맥코이 할아버지'로 돌아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법과도 같은 손가락을 보유한 그가 오래오래 안녕하길 속으로 빌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났다.


공연이 끝난 후 뉴욕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달빛에 미끄러지는듯한' 소리를 뿜어내는 거인이 살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외형만 보고 섣불리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 것조차 좋았다. '뉴욕뽕'이 다시 한번 풀충전된 것이다. 


아내와 공연에 대해 이런저런 감상을 나누다가 기분 좋게 남은 칵테일을 입에 싹 털어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주 대신 비싼 칵테일을 시킨 것도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기 전까지는. 


카드를 긁고 보니 두당 거의 100달러 가까이 결제됐다. 거인의 피아노 연주니, 달빛에 미끄러지는듯한 소리니, 감상이 한순간에 깨졌다. 응?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알고 보니 칵테일뿐만 아니라 입장료 45달러에도 세금과 팁이 일일이 더 붙었더라. 아 맞아 여긴 뉴욕이지. 뉴욕은 뉴욕이네. 그냥 맥주나 마실 걸.

RIP 맥코이 타이너../사진=맥코이 타이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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