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9일 수요일의 허탈감
2020년 박스 오피스 2위에 빛나는 영화는 바로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황정민, 이정재 더블 주연 영화로 총 관객 약 435만 명을 동원했다. 후에 개봉했던 파이널 컷까지 합산하면 이보다는 약간 수치가 높은 정도다. 스크린 수가 박스 오피스 1위였던 <남산의 부장들>보다 많았는데 관객은 적었고 그 이유는 영화를 보니 알 수 있었다. (할 말 많으니 곧 하겠음) 손익분기점이었던 350만 관객을 훌쩍 넘었고 386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니 홍원찬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서는 나름 성공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만.
우선 한국 영화를 오랫동안 보지 않은 이유를 <남산의 부장들>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박스 오피스 1위와 2위가 나란히 누아르 장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대체 이렇게 누아르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2019년이나 2021년의 박스 오피스를 보면 장르가 제법 다양한 게 유독 2020년의 코로나 여파 탓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유난히 코로나와 관련된 수많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과 자극적인 뉴스로 가득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유의미한 검색을 단시간에 해내지 못하여 관둔다.
이 영화는 포스터를 참 잘 뽑았다. 얼마나 잘 뽑았냐면 이 포스터만 보고도 이 영화의 내용을 전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카페부터 '멈출 수 없는 두 남자의 추격'이다. 음. 황정민과 이정재가 쫓고 쫓는 액션 영화군. 그런데 보면 황정민이 저 멀리를 보고 있고 이정재는 뒤를 돌아 그런 황정민을 바라본다. 대충 '음.. 황정민을 이정재가 쫓아다니는 영화인가?' 싶다. 그러고 나면 얼라? 이거 신세계 후속인가? 싶다. 정청과 자성이를 엮어 먹던 나로서는(아님) 이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서도 '와.. 정말 무슨 내용인지 다 알고 기대도 안 된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박스 오피스 2위라고 하니 재생 버튼을 누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파이널 컷과 함께 왓챠 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말 포스터의 내용이 전부 다다. 그리고 포스터에 있는 카피, '멈출 수 없는 두 남자의 추격'이라는 로그라인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된 영화다. 황정민이 이정재에 쫓기는 그 액션을 만들기 위해 캐릭터와 서사 모두 이야기를 위해 지어진 이야기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캐릭터의 밋밋함을 하드 보일드로 포장하기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정말 납작하다. 국정원에서 비밀리에 비윤리적인 임무까지 일삼다가 지금은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인남(황정민)'과 통칭 백정으로 통하는 '레이(이정재)'는 어느 영화에서 보던 영화 주인공들보다 매력이 없다. 설득력도 없다. 그냥 두 사람이 쫓고 쫓기는 관계를 위해서 인물이 존재할 뿐이다. 이유 없이 일을 하고 파나마로 떠날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사랑하던 옛 연인이 죽고 자신의 딸이 납치되어 태국으로 떠나는 인남의 동기는 어쩌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시종일관 표정도 없고 분노도 하지 않는 그와 태국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 그리고 화려하기보다 깔끔한 정도만 보여 주는 그의 액션은 차라리 그것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남에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남이 어필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고 말수도 없는 인남이 갑작스럽게 납치된 아이들을 다 풀어 주자고 한다거나(심지어는 그 아이들을 다 책임지지도 않는다. 걔들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별안간 '유이(박정민)'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모두 맡겨 버리고 살고 싶어 졌다는 고백을 마지막에서야 하는 것도 어쩐지 수긍되지 않는다. 액션과 스타일에 함몰되다 보니 관객은 인남의 감정의 변화를 따라잡거나 이해할 만한 시간이 없다. 그냥 보기만 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레이는 또 어떤가? 한동안 연 끊고 살던 형을 죽였다는 이유로 미친 듯이 인남을 쫓아다니며 그 주변의 사람들을 죽이는 레이가 매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중에 인남을 쫓아다니는 그 이유조차 잊어버렸다는 레이의 말로 감독은 레이의 캐릭터를 보여 주지만 송민호처럼 입고 다니는 이정재는 솔직히 약간 웃기기까지 했다. (특히 선글라스) 더군다나 인남의 옛 연인 영주(최희서)는 시작한 지 20분 만에 죽는다. 청룡영화상에서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박정민은 MTF 트랜스젠더를 연기했는데 이 캐릭터도 밋밋하긴 마찬가지다. 수술을 위해 돈을 벌려고 태국에 왔고, 아이는 한국에 있고, 그런 부(모)성애로 인남을 도와준다는 뭐 그런 설정이다. 캐릭터들이 매력이 없고 뻣뻣하니 나름 감동 포인트인 부분도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이렇게 재미없는 캐릭터를 하드 보일드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이 영화가 신파가 아니라고? 이 영화는 신파다. 근데 그냥 관객을 못 울린 신파다. 왜 못 울렸냐고? 관객이 이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왜 이입이 안 되냐고? 캐릭터들이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아서다. 이건 다른 말이지만 나는 이정재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어디를 나와도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보는 내내 <테이큰>과 <아저씨>의 아류작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나마 <테이큰>은 아빠들의 심금을 울렸고 <아저씨>는 그냥 옆집 아저씨가 되게 잘생기긴 했었다.
2. 태국에 오명 씌우기
사실 이 영화에서 로케이션이 이렇게 많이 쓰인 이유가 뭘까? 그저 태국을 이렇게 그리는 영화를 태국에서 로케이션 허락을 용하게 내서 이런 스케일의 영화를 찍은 게 대단할 따름이다. 물론, 영화에서 나오는 지역에 대한 설명이 허구라는 것은 관객도 잘 아는 바다. 우리는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데 동의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나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있다. 다만, 이 영화가 태국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다. 태국 홍보대사가 아니니까 당연한 거긴 하지만 나라의 치안을 들먹이는 장면이나 인신매매가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는 등의 뉘앙스는 이 영화가 마치 이 소재를 위해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한 나라를 선점해 올린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마약 조직이 도시를 꽉 잡고 있고 경찰과 손을 잡고 있다는 설정까지. 정말이지, 이정재가 황정민을 쫓아다니는 이야기를 위해서 대체로 다른 것들은 전부 존재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3. 여성의 부재
누아르 장르에서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논하는 게 오히려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영주, 영주의 집에서 일을 하던 직원 린린, 인남과 영주의 아이인 유민, 그리고 따지자면 유이까지다. 물론 처음에 등장하자마자 죽은 채 등장하는 이름 없는 단역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 명이다. 영주는 죽고 린린은 협박당하며 영화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다고 할 만한 주인공이 유민과 유이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러나, 영화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는 너무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인남의 꿈처럼 느껴진다. 성소수자와 아이에게 살아남는 미래를 주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것이 아닌 것처럼 평화롭기 때문에 수상하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누아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는 왜 자꾸 누아르를 보아야 하나? 장르 안에서 수많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아르는 언제나 남성들의 장르였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이미 <남산의 부장들>에서 언급한 바 있듯 남성들끼리의 사랑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성들은 언제나 누아르에서 소비당하고 냉장고 속의 여성으로 전락한다. 이 영화를 보며 지난한 기시감을 느꼈던 것도 아마 그런 탓이었을 것이다. 누아르라는 장르에 잘못이 있다기보다도 누아르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경직되고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이경영이 나쁜 놈으로 나와서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황정민, 이정재, 하정우, 이병헌, 최민식(기타 등등 이와 유사한 배우)이 나와서 총이나 칼을 잡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다가 브로맨스로 뜨뜻하게 엮일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불한당>이 흥행한 이유는 그곳에 '임시완'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적어도 <불한당>의 감독은 누아르가 브로맨스 엮어 먹기 영화임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미 <아우라>, <신세계>, <불한당>과 같은 굵직굵직한 누아르가 나온 시점에서 나는 이제 다른 누아르가 보고 싶다. 누아르를 만드는 감독들이 조금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주기도문의 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문구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다음에 나오는 기도다. 그렇다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악은 누구인가? 레이인가? 아니면 인남인가?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사회 구조인가? 그렇지만 감독이 이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었다면 그것은 꿈보다 해몽일 것이다. 인남도 영화도 감독도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관객은 그저 여름철의 시원한 액션이 그리웠다면 그것만 뽑아 쭈욱 마시면 될 테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정재의 송민호 패션도 제법 괜찮은 볼거리고 이정재와 황정민의 액션에 확연한 차이를 느끼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문제는 다만 거기까지라는 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