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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Y 시나몬 Jul 26. 2019

여기 약국 맞아요?

예쁜약국 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 Preview

   



   매일 다양한 환자들을 맞는다. 때때로 약국을 떠나 여행을 간다. 틈틈이 책을 읽고, 여유가 있을 땐 서평을 쓰려고 노력한다. 음악을 좋아하여 약국에서나 집에서나 늘 음악을 듣는다. 가끔은 라디오를 켜 둔 채 출근을 하여 깜깜한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면 반가운 음악이 하루에 지친 내 심신을 따스하게 위로한다.  

   


   꽃을 좋아해서 약국을 열까 꽃집을 열까 고민하다가 약국을 열었다. 지인들의 생일에 꽃다발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며 약국의 곳곳에는 말린 꽃들이 내부 인테리어를 담당한다. 동물약품 개설등록을 하면 약국에서도 동물의약품을 취급 및 판매를 할 수 있으며 예쁜약국의 내외부에는 큼직한 ‘동물의약품 판매’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좋아 개국 당시 약국의 전면 유리에 시 전문을 썼다. 층고가 높은 1층 건물의 장점을 살려서 복층을 만들고 2층을 오픈형 개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약국은 빨간색 ‘약’ 자가 있어야 하는데 예쁜약국에는 없다. 전면을 ‘빵’ 자인지 ‘약’ 자인지 구분도 안 가는 그 붉은 단어로 꾸미고 싶진 않았다.   



       약국이 어느새 개국 4주년을 맞이했다. 하루에 꼭 한 번은 어김없이 듣는 말, “ 여기 약국 맞아요?”.  그도 그럴 것이 외관부터 약국 같지 않으며 내부는 꽃집인지 카페인지 분간이 어렵다. 심지어 내부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마다 식물과 디퓨져가 놓여있다. 약 냄새 대신 달달한 향초 냄새가 나고 가끔 화병에 꽂혀있는 생화 때문에 향기롭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그래서 예쁜약국은 나를 참 많이도 닮았다. 약국을 열자 약사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온라인 사이트의 기자가 방문하여 취재를 했고 내 얼굴과 함께 약국 사진이 온라인 메인 화면에 걸렸다. 정작 나는 몰랐는데 친구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오고서야 알았다. ‘예쁜약국이 독특한 거구나!’.  그때 비로소 실감했다. 예쁜약국이 기존의 약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예쁜약국 프로젝트’는 우연찮게 시작됐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일했던 요양병원이 사무장병원 혐의로 조사를 받으며 병원의 모든 직원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난생처음 실업급여라는 제도를 알아보고 함께 일했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시청의 민원과에 민원을 접수하고 고용센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며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건물의 ‘빈 공간’ 이 눈에 띄었다. 건물에는 병원이 없었고 건물 옆과 건너편은 병원들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그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텅 비어있던 공간을 기존의 천장을 뚫어 지금의 약국을 만들었다.  약국을 전문으로 하는 인테리어 회사는 처음부터 배제했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장님 내외분이 운영하시는 디자인 회사와의 콜라보로 예쁜약국이 탄생한 것이다. 실장님은 나와의 수차례 회의를 통해 예쁜약국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 주셨다. 어떤 약국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정말 많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신 것이다. 병원에 기생하여 운영을 시작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독립적인 하나의 약국이 세워졌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처럼. 그러나 임의조제는 불가한 독특한 약국.



       예쁜약국은 생계형 약국이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남편 잘 만난’ 덕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나의 건강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탄생한 약국이다. 이 모든 내막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약국을 ‘취미’로 운영한다고 말한다. 물론 나는 그 모든 반응과 이야기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이해한다. 기존의 다른 약국들과 달리 문이 닫혀있을 때가 많고, 늦게 열기도 하며 가끔 약사의 개인적인 일로 일찍 문을 닫는다. 그러니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것이다. 문이 장기간 닫혀있을 때는 ‘테마형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갈 때이고, 늦게 열 때는 몸이 좋지 않을 때, 그리고 일찍 닫을 때는 ‘지적 희열감’에 중독되어 많은 강연과 강의를 쫒아다니느라 그랬다. 이제 개국 4년 차에 접어들자 나의 단골손님들은 약국으로 전화를 먼저 걸어주신다. 내가 약국을 열었는지 확인하시는 것이다. 약국의 2층 공간에는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있다. 아플 땐 누워서 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땐 내가 읽고 있는 책들과 업무 거리들이 아름답게 섞여있다. 나의 아지트는 돈 내고 차 마시는 단골 카페도, 마이카(My Car)도, 나만의 방도 아닌 바로 예쁜약국 2층이다.



       약사라는 직업으로 거의 10년째 살아오고 있다. 회사, 국립암센터, 병원 약국, 개인 약국, 대형약국, 요양병원의 약사를 거치며 내가 스스로 깨달은 사실은, 나는 환자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다. 나의 전문성이 내가 가진 감수성과 만날 때 환자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약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이뤄지는 상담은 환자와 약사와의 만남이지만 공간을 더 확장시켜 본다면 개인과 개인의 우연한 만남이다. 내 사명과 소명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이다. 내가 정말 ‘내 자리’에 있는 기분이 든다. 유영만 교수님은  <공부는 망치다>라는 책에서 사람이 공부를 하는 목적은 나에게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아 삶의 정도(正道)를 걸어가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여기서 일자리는 ‘제자리’,’ 설자리’,’ 살 자리’ 위 세 가지를 의미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 제자리’, 내가 마땅히 있어야 ‘설자리’,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살 자리’가 ‘내 일자리’가 되어야 공부와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나의 인생 책 중 한 권인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문장이다. <Brunch>라는 공간을 통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설레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예쁜약국 합니다]라는 꼭지명은 나의 지인이자 작가인 B가 나에게 책을 꼭 내라며 정해주었던 책 제목이다. 내 경험과 사유의 조각들이 나의 전문성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독서를 하고, 환자를 만나며, 일탈을 하며 문화적 충격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틀에 아름다운 '틈'을 만들어 가고 싶다. 예쁜약국에 갇혀있는 약사가 아니라 약국을 벗어나 겪었던 수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지금의 예쁜약국과 예쁜 약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그리고 글을 통해 증명하고 싶다. 틈 사이로 불어오는 아름다운 바람이 나의 모든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부수어 그렇게 탄생한 나의 말과 글로 하여금 삶에 지친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길 감히 바라본다.



2019.06.30 원주 예쁜약국 약사 정문영. J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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