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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MY 시나몬 Aug 05. 2019

감정의 선택, 행복의 리셋(Reset)

Solve the Happiness & This is Water

   결혼한 지 8년 차인 나는, 살림의 여왕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집안일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아내이며 일하는 여성이다. 현모양처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성을 뜻하는 사자성어 속에는 정작 ‘나’는 없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 한 여성이 아내와 엄마의 삶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힘든 것 같다. 물론 여성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심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유리 장벽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일하는 여성들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 우리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나다움’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주변의 상황을 탓하며 슬퍼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내 인생의 행복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지난주, 바싹 마른빨래를 건조대에서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빨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것은 불행을 버리고 행복을 취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구나.’ 살림이 아내의 몫은 아니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규칙이 없으면 서로 미루다 다투게 된다. 나보다 훨씬 업무강도가 높은 남편을 위해 ‘아내’ 역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집안일을 주로 도맡아 하지만 나 또한 힘든 상담과 과중한 업무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 보면 잔뜩 쌓인 빨래 더미 앞에서 억울하기도 하다. ‘ 나도 밖에서 일하고 왔는데!’ 라며. 하지만 결국 나는 ‘짜증 나게’ 보다는 ‘즐겁게’를 택함으로써 행복했고 비로소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클리셰(Cliche)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걷어 놓은 빨래를 거실의 소파 위에 쌓아놓았는데,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던 남편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래 좀 개 주면 안 돼?’라고 말했다가 걷잡을 수 없는 부부싸움으로 번진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분노로 표출할 것이냐 , 감정상태를 차분히 설명해 줄 것이냐 , 또한 오로지 선택의 문제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감정의 선택과 함께 우리의 행복을 취하거나 버린다.

 

       행복은 감정의 순수한 ‘느낌’이며 따라서 기대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글 X 공학자인 모 가댓은 <행복을 풀다>라는 책에서 행복 방정식을 제시했다.  ‘ 행복 ≥ 사건들 - 기대들 ’. 남편과 연애할 당시, 연애세포가 미처 성숙치 못한 남자 친구를 탓하며 내 생일날 어디서 보낼지 내가 정해야 했고 심지어 선물도 함께 골랐다. 덕분에 나는 살면서 다가오는 모든 기념일에 대한 기대치가 제로베이스로 세팅이 됐고 행복 방정식에 따르면 나의 행복은 최대치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끊임없이 ‘이벤트 남자’가 되기를 요구했다면? 내가 만든 ‘기대 프레임’에 나와 남편을 가두고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여전히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사건 자체가 아닌 순간의 감정의 선택이고, 한 개인의 삶은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나다움’의 존엄성을 지킬 의무가 있다. 결혼하여 아이 낳고 살다 보니 남는 건 ‘아내’, ‘OO엄마’ 그리고 ‘아줌마’라는 타이틀이라고 하소연하는 어머니 환자분들이 많다.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두렵기도 했다. 물론 그분들이 잘 못 산건 아니다. 다만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는 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늘어나는 이혼율 또한 ‘자존감’의 부재와 ‘자존심’의 지나침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혼한 부부들을 보면 다양한 원인과 각각의 사연이 존재하지만 서로의 센 자존심과 부족한 자존감이 결국 서로를 배려하지 못한 언행으로 이어져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배우자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나다움’과 ‘행복’을 선택할 자유의 기회는 항상 존재하지만 우리는 주로 행복보다는 불행을 택한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찰나에 나는 <이것은 물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저>라는 책에서 그 답을 찾았다.

 

       대학 졸업식의 축사를 맡게 된 저자는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되면 우리는 쉽게 불만과 짜증을 낸다. 이것이 우리의 디폴트 세팅이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태생적으로 자동 설정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 지려거든’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행복의 개념이 트렌드가 된 요즘에 여전히 우리가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빨래를 걷으며 행복을 취하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벤트 남자가 아닌 남편을 위해 아내의 기대치를 제로베이스로 세팅하며 정신 수양을 했다. 행복이 그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태생적인 디폴트 세팅으로 우리 자신을 머물게 함으로써 불행할 것인지, 아니면 ‘깨어있는 상태’로 나와 타인과 상황을 조감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통해 행복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행복을 리셋(Reset)해보는 건 어떨까? 자유와 행복, 그리고 ‘나다움’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대가를 치르고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가치들이다.


2019.07.15 예쁜약국 정문영 J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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