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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Jun 28. 2022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96. 내 고향 집 언덕, 1965-2022


오랜만에 나 살던 고향을 찾았다.

이제 동생집 마저 떠나버려 

일부러 올 일도 없어진 터지만

어머니 기일 시간이 남기에 들렀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가 

아파트 숲과 온갖 건물 틈 속에서 

살아 남아 나를 반긴다.


죽지 않고 버텨줘서 고맙다.


저 그늘 아래 어른들이 소주를 기울였고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으며,

단오 때 그네를 탔었다.


마을로 들어서니 

첫 번째 집 찬복이 형네 집은 빌라가 들어섰다.


마당 깊은 집.

앞마당에서는 늘 여러 가지 놀이를 했었고

겨울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너덜너덜해진 <소년중앙>을 읽던 기억이 새롭다.


동네 원주민은 대개 떠나버려

부서진 옛집 사이 거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내 어머니 아버지를 아시니

면이 익지 않지만 반갑다.


그리고 바로 연수 할머니네 집터가 보였다.

집은 점점 부서져 가고 있었다.

할머니네 우물은 맑고 차가웠었다.

할아버지는 한량이었지만 멋이 있었고

서울에서 가끔 놀러 오는 연수는 우리랑 잘 어울렸다.


우리의 공인 주경기장, 

뒷동산 잔디밭과 송림은 사라졌다.

깎이고 흙투성이가 되었다.

우리의 추억도 저 무더기에 묻혔다.


동네 마지막 남은 우물이자

우리 집과 여남은 가정의 식수원 우물은

이제 수명을 다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았다.


중 고등학교 때 물지게를 지고 오르락내리락하던 

나에게는 노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내 살던 언덕 위 집 터는 잡목과 화원의 공간이 되었다.

그나마 형제가 이 딸을 갖고 있어 다행이다.


저 산과 언덕과 밭이 

내 청소년기 전부를 대표하는 장소라 할 것이다.

연두색 혹은 녹색 꿈을 꾸었더랬다.


우리 집 옆 고갯길을 따라 

넘어가면 또 다른 동네가 나온다.

형제 동네 이른바 '고개 너머' 마을이다.

개울가 빨래터가 있었고

가로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유일무이 동네 이발소 아저씨는

중국 아저씨 시다를 두고 버티다

결국 미용실로 바뀌었다.

하기사 아저씨도 이제 힘 빠진 

은퇴할 노인이 되신 것이다. 

고생하셨네요, 아저씨!!


늘 발동기 힘찬 경유 냄새를 뿜던 정미소는

흔적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멸종되어 가는 살구가 반긴다.

저 살구처럼 사라져 가는 고향과

추억과 기억들이 

한여름 습도처럼 끈적하다.


아듀. 

내 사랑,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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